공연 꽤나 보러 다닌 30대 후반의 아저씨 기자에게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은 익숙하다. 싸이 '올나잇 스탠드'를 함께 하며 밤을 새기도 했고, '살아 있는 헤비메탈의 전설'로 통하는 '메탈리카', 록 마니아들과 함께 땀내 나도록 헤드뱅잉과 슬램도 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너무 프로다운(?) 무대에 놀라기도 했고, 테일러 스위프트 팬임에도 그녀의 숙적(?) 케이티 페리 무대에 감탄도 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펼쳐진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의 마지막 공연 '2019 워너원 콘서트 데어포(Therefore)'는 달랐다.
'워너원 콘서트 데어포' 두 번째 날인 25일 오후. 2만명이 운집한 고척스카이돔은 숙연했다. 7시32분이 되자, 대형 스크린에 99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2, 1은 모두 다 같이 한 소리로 합창했다.
'위 위시 투데이 윌 비컴 이터널 메모리스(we wish today will become eternal memories)'라는 문구가, 워너원의 마지막 공연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데뷔곡 '에너제틱'으로 무대를 본격 예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결성시킨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대표곡 '나야나'가 이어졌다. 멤버들이 돌출 무대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통로로 나가, 팬들을 가까이 만나자 공연장 내 수은주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순식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된 멤버들은 팬들인 '워너블'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옹성우는 "누군가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했는데 워너블 사랑은 밥 먹여주더라. 난 아직 배고프다"라며 웃었다.
첫째날인 전날에는 멤버들이 박지훈, 배진영, 라이관린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날 주인공은 하성운, 윤지성, 강다니엘이었다. 윤지성은 "강다니엘과 같이 살 때 집 앞 식당에서 쌀국수을 같이 먹으면서 이 쌀국수를 원 없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며 돌아봤다.
하성운, 윤지성, 강다니엘은 이날 스페셜 스테이지를 통해 각각 솔로 무대도 선보였다. 하성운은 혼성그룹 '쿨'의 '너의 집 앞에서'를 들려주며 감미로움을 뽐냈다. 윤지성은 '프로듀스 101' 시즌 2 출연 당시, 자기소개 영상에서도 들려줬던 커피소년의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를 불렀다. 강다니엘은 가수 비의 '레이니즘'으로 섹시함을 선보였다.
이어 다시 워너원 완전체 무대가 이어졌다. 워너원의 '2018 골든 에이지' 신호탄을 쏜 부메랑을 시작으로 '켜줘' '보여' 등 섹시한 무대가 이어졌다. 올해 우리나이로 스무살이 된 배진영이 농염함을 더 마음껏 발산하는 등 멤버들은 1년6개월 동안 한껏 성숙해졌음을 증명했다.
이날 '리(Re) : 멤버 파트 2' 주인공은 황민현과 박우진. 항상 넘치는 에너지로 인해 '우너자이저'로 불리는 박우진에게 강다니엘이 "조금은 루즈해져도 된다"고 언급한 부분은, 멤버들끼리의 돈독해진 우애를 확인시켰다.
윤지성과 이대휘의 내레이션을 통해 '숫자로 보는 워너원' 영상 상영도 흥미로웠다. '0.00000000000000629'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지.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출연한 101명 중 워너원 멤버 11명이 만날 확률이란다. '아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든 순간, 워너원을 숫자로 소개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 '불꽃놀이'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묻고 싶다'가 나오자 눈물을 글썽이는 팬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원 러브 / 너 거기 서 있어줘 / 더 멀어지지 않게 / 널 바라볼 수 있게"라는 노랫말이 이별을 뜻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성운이 깜짝 공개한 복근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우리 다시 만나 / 봄바람이 지나가면 / 환하게 웃을게 / 봄바람이 지나가면 그때라면." 겨울의 한가운데서 부르는 '봄바람'은 그래서 더 아련했다. 이 곡은 본 무대 마지막 곡이었다.
강다니엘은 워너블을 향해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든든한 제 친구", 윤지성은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이지 알아서 더 고맙다"고 했다. "워너원이 없는 곳에서도 워너블은 항상 항복할 거죠. 영원보다 하루 더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다소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글도 하성운의 진심이 담기니 애틋해졌다.
멤버들이 편지를 낭독하는 사이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앙코르 곡으로 '12번째 별'이 나왔다. 음원으로 들을 수 없고, CD에만 포함된 곡이다. '12번째 별'은 워너원을 팬들을 지칭하는 표현. "수많은 별 중에 널 만난 / 이곳은 우리의 기적의 별 / 우리의 12번째 별 마음속의 빛이 모여"라고 워너원 멤버들이 노래하자 고척스카이돔은 울음바다가 됐다.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성 관객은 100만원대 암표를 사고 왔다는데···. 이런 진심을 악용하는 나쁜 암표상들. 27일까지 4회 공연에 8만명이 운집하는데 못 봐서 소셜 미디어 중계에 의존하는 워너블들도 한둘이 아니다. 언제가 이들의 뿌리를 뽑아버릴 기획 기사를 쓸 테다.
"끝난다는 생각에 마음 아프기도 하고 마지막이니까 더 힘내서 하려고···."(황민현) "영화 '맨 인 블랙'처럼 기억을 없애는 일이 생겨도, 워너블을 잊지 않을게요."(박우진) "워너블 눈에 많이 담을게요."(김재환) "멋있게 만들어줘 고마워요. 여러분을 만나서 기적이 만들어졌어요."(하성운) "행복한 감정과 슬픈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서 미안해요."(윤지성) "오늘 따라 더 실감이 나네요. 워너블이 아니었으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거예요."(강다니엘) "끝이 아닐 거예요"(배진영) "1년 반이 길게 느껴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금방 갔어요. 오늘은 일어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공연이) 며칠 안 남아서···."(이대휘) "워너블이 모이는 순간 저희도 다시 모일 겁니다."(박지훈), "워너블을 만나서 참 다행이에요."(옹성우) "제 인생이 많이 남았지만 10명 같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거 같아요. 사랑해요."(라이관린)
미디엄 템포로 편곡된 '뷰티풀'을 마지막 곡으로,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90도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시인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렇게 뜨겁게 사랑하고 아파한 적이 언제였던가. 냉동실에 화석처럼 박아둔 음식물처럼 단단해진 30대 아저씨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끝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질주하는 청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모두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바보같이 아쉬움 많은 노래가 / 하늘에 닿기를 / 당신 향해 밤새운 내 기도가 / 마음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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