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페미니즘·북한·스타···2018 무대 공연계 총결산

기사등록 2018/12/21 06:01:00
미투 운동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2018년 공연계만큼 다사다난한 분야도 없었다.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로 출발했다. 무대에 페미니즘 열풍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도 됐다.

하지만 이내 훈풍이 불었다. 남북이 평화모드로 접어들면서 이를 반영한 공연, 기획도 잇따랐다. 예술의전당 30주년과 세종문화회관 40주년 등 대표적인 국공립 예술기관에게는 기념할 만한 해였다. 민간 공연제작사 중에서는 신시컴퍼니가 30주년을 맞았다.

공연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2017년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공연시장 규모는 8132억원이다. 8000억원대로 진입한 것은 공연예술실태조사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작년 시장을 조사한 것이지만 올해 대형 공연이 많았던만큼 내년 같은 조사에서 공연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뮤지컬, 클래식 분야에서 스타들의 공연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극화는 심해졌다. 전체 매출액 규모가 증가했지만 전체 공연 횟수 15만9401회(8.5% 감소), 총 관객 수 2902만4285명(5.3% 감소)으로 전년 대비 줄어들었다. 특정 공연에 관객이 몰리는 쏠림 현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연극, 미투와 남북관계

공연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따져 가장 큰 미투 직격탄을 맞은 분야는 연극계다.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을 비롯, 연극계의 고발이 활발해지자 곪은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권력구조로 인한 불공정한 계약 관행, 인권 침해 등 부당노동행위가 쌓여 예술계 성폭력을 조장했다는 분석이 다.
이윤택
공연계 미투 운동이 소셜 미디어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연극 뮤지컬 갤러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반면 올해 들어 남북 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공연계의 북한 조명이 활발해졌는데,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인 것도 연극계다.연출가 이경성이 두산아트센터와 손잡고 선보인 신작 '러브 스토리'는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했다. 오슬로 협정을 다룬 작품으로 흥행에도 성공한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오슬로'는 평화 협상의 지난함을 보여주며 남북관계의 타산지석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국립극단은 24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북한 극작가 송영의 '호신술'을 공연한다. 내년에는 북한 현대연극을 소개하는 '북한현대연극 톺아보기'를 펼친다.

무용계와 가무극(뮤지컬)계에서도 북한 공연을 조명했다. 현대무용계 한류스타 안은미는 지난 6월 '안은미의 북.한.춤'을 선보였다. 서울예술단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7월 '공연예술 남북교류 아카데미'를 열었다. 서울예술단은 1985년 정부의 '민족대교류 선언'을 계기로 그해 9월 이산가족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동시 교환이 성사되면서 창단의 기틀을 마련했다.

◇뮤지컬, 페미니즘·스타 키워드
조승우 '지킬앤하이드'
비교적 여성 관객이 많은 뮤지컬에서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다. 여성 혐오에 맞서 문제의식을 갖춘 작품들이 여러 편 공연했다.

지난해 공연에서도 크게 주목 받은 창작뮤지컬 '레드북'은 미투 바람을 타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신사의 나라 영국, 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 받는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안나'라는 기념비적인 여성 캐릭터로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미국 뮤지컬 작곡가 겸 극작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베르나르다 알바'는 40대부터 2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10명으로만 출연진을 꾸려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라이선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와 '번지점프를 하다' 등은 여성을 그리는 측면에서 관객이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을 줄이거나 변경했다.

스타들의 귀환이 하반기 시장을 들썩였다. 가수 박효신·그룹 '엑소' 수호의 '웃는 남자', 조승우·홍광호·박은태 뮤지컬스타 트리오가 나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전역한 뮤지컬돌 개척자 'JYJ' 김준수의 '엘리자벳', 유연석·이규형 등 TV에서 인기를 누린 배우들의 무대 복귀작인 '젠틀맨스 가이드' 등이다.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 인터내셔널 투어 대구 공연, '태양의 서커스-쿠자' 등 대형공연도 연말 공연시장을 달궜다. 신시컴퍼니가 30주년 기념작으로 선보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마틸다'처럼 가족을 겨냥, 관객층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시도도 있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총 제작비 175억원을 들인 '웃는남자' 같이 창작뮤지컬의 파이를 키운 작품도 눈에 띄었다.

◇클래식음악, 대형 악단·거물 아티스트 내한
예브게니 키신
클래식음악 분야에서는 대형 해외 오케스트라와 거물 스타들의 내한이 잇따랐다.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에사 페카 살로넨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 & 뮌헨 필하모닉, 주빈 메타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이 주목 받았다.

특히 공연 한 달 전 건강이 악화된 마리스 얀손스를 대신해 급히 대타로 투입된 메타는 만 82세의 나이에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컨디션에도 호연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15년 만에 내한해 클래식계를 들썩였다. 살로넨 & 필하모니아와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흠결 없는 연주로 들려줬다. 올 때마다 매진 신기록을 쓰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리사이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협연으로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특히 10월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사이틀에서 빚어진 8차례 앙코르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얍 판 즈베덴, 핀커스 주커만 등 거장 지휘자들을 객원으로 초청, 연주했다.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은 유럽 투어를 돌았다. 특히 서울시향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한 첫 프랑스 파리 공연으로 호평을 들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활약도 돋보였다. 기존의 예술감독들과 비교해 상당히 젊은 30대인 그녀는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이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을 비롯, 세계에서 활약하는 또래들을 모아 결성한 프로젝트성 악단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호평을 들었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조성진, 선우예권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스타 피아니스트들도 리사이틀과 협연 등으로 국내 클래식 시장을 달궜다.

지난 5월 독일 명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악장 지위를 받은 이지윤, 지난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아시아인 종신 악장으로 임명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등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주요 임무를 맡는 한국인 단원들이 늘어난 것도 특기할 만했다.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 120주년,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겸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들도 잇따랐다.

한국오페라 70년 사상 한국 프로덕션이 처음 기획, 제작한 '니벨룽의 반지' 1부 '라인의 황금'도 주목 받았다. 리뷰는 엇갈렸으나 공연한다는 자체에는 대체로 의미를 부여했다. 제작사인 월드아트오페라는 2020년까지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니벨룽의 반지' 나머지 3편을 공연한다는 계획이다.

◇무용·국악, 스타와 북한

무용계에서도 스타, 유명 무용단의 내한공연이 잇따랐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은 지난 4월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지난달 자신이 몸 담은 마린스키발레단과 함께 '돈키호테'에서 완벽한 기량을 선보이며 찬사를 들었다.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세계적인 발레 스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는 유니버설발레단 객원무용수로 '라 바야데르'에 출연, 이름값을 증명했다.
황병기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네덜란드 댄스시어터1'(NDT1)은 예술의전당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6년 만에 내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어내는 무대를 선보였다.

앞으로 북한과 교류에서 중심 역을 할 것으로 보이는 국악계에서는 북한 음악에 대한 조명이 일찌감치 이어졌다. 국립국악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북한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했다.

국악계에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국악인의 나침반'으로 통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2018)가 지난 1월 별세했다. 창작 국악의 지평을 넓힌 예술가로 통한다. 국악을 전통 안에만 가두지 않고 동시대의 음악과 예술의 경향을 녹여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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