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 불편 기류…북미 핵협상,교착 풀 돌파구는?

기사등록 2018/11/22 10:54:37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뒤 진전 없는 협상

분위기 개선 아이디어로 돌파구 마련해야

【서울=뉴시스】 미국을 방문 중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은 16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국무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 장관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관해 전반적으로 논의했다.다.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함께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고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2018.11.17 (사진=통일부 제공)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한미 워킹그룹 회의가 열리는 동안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한 사이의 관계 개선 속도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길 원한다는 것을 한국 측에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워킹그룹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었으나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 발언이 한국에 경고한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한 관계증진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에 확실히 했다(We have made clear to the Republic of Korea that we do want to make sure that peace on the peninsula and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ren’t lagging behind the increase in the amount of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two Koreas)" 자구대로만 보면 경고했다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최근 한미간 기류를 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이런 보도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이 한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는 것을 굳이 나서서 막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음날 하원의원 시절 지역구인 미 캔자스주의 라디오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 진전 상황을 묻는 라디오 앵커의 질문에 "갈 길이 멀지만 시간표를 정해놓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언 내용은 전반적으로 자신이 언제든 복귀할 지도 모를 지역구민들에게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며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취지였다. 따라서 전날 발언에 대해 부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렇더라도 '한국과는 아주 잘 협력하고 있다'라는 정도로 말을 덧붙였다면 전날 발언의 파장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미간에는 현재 불편한 기류가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간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 주장 모두 일리

그런데 이런 흐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가지 주목할 만한 대목들이 보인다. 

우선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ID)가 진전되기 전에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마이클 볼턴 백악관 보좌관, 그리고 폼페이오 장관의 입에서 수시로 나오는 발언이다.

이런 생각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미사일 목록을 제시하라는 요구로 구체화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 말뿐이고 이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핵리스트 제출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후 핵실험장 폭파와 미사일 발사 시험장 폐쇄를 선언하고 진행했는데 미국은 아무런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를 타겟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비공개 접촉을 제외한 공식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북미간에 아무런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목록을 제출하면 유사시 '공격 목표'를 내놓으라는 뜻밖에 더 되느냐며 미국의 요구는 '강도적'이며 '비논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달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리스트를 전달하더라도 양국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면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취지로 선 리스트 제출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미 양측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미국이 '비핵화 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고 버티는 것은 수십년에 걸친 불신의 표현이다. 북미간 여러차례 협상과 합의가 있었지만 북한이 이를 어기고 결국 핵무기를 가진 만큼 말만 믿고 제재부터 해제하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을 반대하는 미국내 세력들이 핵협상을 공격의 핵심 소재로 삼고 있는 것도 미국이 완고한 입장을 누그러트리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다.

북한의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비록 상징적일 뿐이지만 북한은 핵실험장 폭파 등을 통해 나름 성의를 보였는데 미국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는 힐난의 강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한을 믿지 못하는 만큼 북한도 미국을 믿을 수 없기에 우선 신뢰회복을 위한 상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미국의 주장은 수십년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북한의 주장은 최근 북한이 취한 조치를 존중해달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모험적인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이에 비해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일이라고 주장해온 북한은 한국이 이를 견인하겠다는 것이 주제넘다고 보는 듯하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이선권이 남한 재벌총수들에 "냉면이 넘어가느냐"고 조롱한 일은 이런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제 무대에 데뷔시켜준 것을 고마워하는 처지여서 예전과 달리 "한국은 빠지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교착 풀 수 있는 돌파구 필요한 시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부터 5개월이 지나도록 핵협상은 진전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진전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미는 지금까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서로 상대방이 먼저 움직일 것을 요구하면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다. 말그대로 교착상태인 것이다. 

앞서 밝힌대로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가 진전되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시간에 구애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먼저 양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재를 당하는 것은 북한이니 제재의 고삐만 쥐고 있으면 결국 북한이 굽히고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시간에 구애되지 않겠다는 말은 북한이 보기에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시간이 급한 건 오히려 미국일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핵협상을 진전시키려 할 가능성에 베팅하겠다는 생각일 지 모른다.

이처럼 팽팽한 대립이 지속되는 한 교착이 길어질 위험성만 커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이든 미국이든 교착 상태를 풀겠다는 의지다.

비핵화 진전없이 제재 완화 없다는 미국이나 신뢰조치 구축없이 섣불리 비핵화에 성큼 나설 수 없다는 북한 모두 핵심주장을 후퇴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한국이 아이디어를 냈다가 북미 양측에서 퇴짜당한 종전선언은 분위기 조성용 카드였다. 이를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 나아가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연락사무소를 평양에 설치하는 식의 진전된 입장이 필요하다.

이에 상응해 북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영변 핵단지나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발사장의 해체 이외에, 예컨대 비밀 우라늄 농축 기지를 공개하는 정도의 성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은 다시 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추가적으로 비핵화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이후에 미사일과 폐기, 핵무기 폐기와 제재 해제를 주고 받는 선순환의 과정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북한 철도 개선 사업에 착수하는 식으로 보조를 맞추면 된다.남북관계를 진전시켜 핵문제 해결을 견인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다. 그러나 핵해결 진전 분위기를 증폭하는데는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 중간선거가 마무리되고 내년 1월에는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내년 1월초로 잡은 것을 이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연초부터 공격에 나서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다. 지금이 바로 미국과 남북한 모두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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