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적용 없는 화재안전법 '무용지물'…인명 참사 키운다

기사등록 2018/11/18 08:30:00

대형화재로 안전규정 강화…기존 건축물 적용 안돼

강화된 화재안전법 의무 적용 대상 이난 권고 대상

제천 스포츠센터·종로 고시원화재 소급적용 도마위

건축물화재 2013년 이후 매년 증가…"소급적용 필요"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날 화재로 8시40분 현재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018.11.10.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화재, 인천 세일전자화재에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까지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건축물 화재안전 관련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화재안전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소급적용 안되면서 안전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행정안전부(행안부)와 소방청,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건축물의 화재안전기준은 '건축법'과 '소방 관련 법령'으로 이원화돼 있다.

부산 해운대 우신골드스위트 오피스텔 화재,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건축법'상 관련 규정 강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건축법'은 피난구조와 마감재료 등에 초점을 맞춰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건축물의 물리적 구조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다. 화재 발생 시 연소 확대 방지와 외부로 피난이 신속이 이뤄질 수 있도록 피난로를 확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소방 관련 법령'은 주로 소방설비에 관한 내용이다. 건축물 조성 후 화재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책 모색을 위한 스프링클러 설치, 유도등, 피난 기구 설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주요 법령으로는 ▲소방기본법 ▲소방시설공사업법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험물 안전관리법 등이 있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규제도 강화됐지만 기존 건축물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바로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 부분이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날 화재로 8시40분 현재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018.11.09. scchoo@newsis.com
강화된 규제는 신축 건축물에는 가능하지만 기존 건축물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건축물은 규제의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라 권고대상이다.

실제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됐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현행 기준으로 가연성 외장재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건축물은 법령 개정 전에 지어진 건축물로 건축 당시 가연성 외장재 사용 금지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 9일 7명이 사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에서도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이 도마에 올랐다.

고시원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관련법 상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소방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지하층 150㎡ 이상이거나 창문이 없는 층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국일고시원은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국일고시원은 고시원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방서에서 받은 필증만 있으면 고시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영업이 가능했다. '기타 사무소'는 국가안전점검대진단 대상이 아니다.

관련법 소급적용 논란 속에 건축물 화재 발생은 2013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 연도별로는 2013년 2만5662건, 2014년 2만5821건, 2015년 2만6303건, 2016년 2만7298건, 지난해 2만7714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건축물 화재건수는 전체 화재건수의 62.7%를 차지하고 있다. 건축물 화재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 281명, 부상자 1519명, 재산피해 4457억원이었다. 건축물 화재는 차량화재, 선박화재, 임야화재 등 여러 화재 유형 중 인명·재산피해 규모가 가장 크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2018.11.11.kkssmm99@newsis.com
건축물 용도별로는 단독주택이 6422건으로 화재발생 건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공동주택(4869건), 음식점(2838건), 공장시설(2628건), 창고시설(1696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대형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신축 건축물에만 적용되고 있다"며 "관련법 소급적용 등으로 기존 건축물의 방화성능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고시원,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의 스프링쿨러 설치는 법이 제정되기 이전이면 적용받지 못한다"며 "법 제정 이전부터 영업한 건물이라고 해서 의무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도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방시설이나 비상구 등에 대해선 오래된 건물이라도 새로 바뀐 소방 규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며 "결국 소급 적용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mkba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