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궤짝에 담긴 진짜같은 사과 탐스럽고 환상적
15년째 '사과 그림' "볼때마다 기분좋다 호평 행복"
7일부터 노화랑에서 개인전..2m 대작등 20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30여년전 사과는 그림이 됐다. '사과 작가'는 세잔이 원조다. 프랑스 화가 폴 세잔(1839~1906)이 40년 동안 보고 또 보고 그린 사과는 큐비즘의 문을 열었다. 사과가 모델이 된 건 변덕을 부리지 않아서다. 움직임도 없고 쉽게 썩지도 않고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던 사과 덕분에 세잔은 피카소가 존경하는 '현대미술 아버지'로 등극했다.
미술사의 물꼬를 바꾼 사과는 15년전 서울에서 다시 마술을 부렸다. 경북 영천에서 자란 화가 윤병락이 늘 보고 먹다 그린 사과는 21세기 현대인의 지갑을 열었다. 고향에서 흔했던 나무 궤짝에 담아 그린 사과는 불티나게 팔렸고 '그냥 화가'는 일약 '사과 작가'로 등극했다.
“나는 순간의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다"며 몰두한 세잔의 사과가 투박한 화석같다면, 윤병락의 사과는 매끈해 먹음직스럽다. 단단한 터치로 형태에 집중하고 전통 원근법을 깬 건 공통점이다. 세잔이 사과로 파리를 정복했다면, 윤병락은 사과로 대한민국 미술시장을 정복했다. 그렇게 15년째 '사과=윤병락', '윤병락=사과'로 살고 있다.
사과철인 10월~11월 매년 개인전을 여는 사과 작가 윤병락(50)은 올해도 어김없다. 빨간 홍옥과 푸른 사과를 또 궤짝에 담아왔다. 오는 7일부터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선보인다.
대개 화가들이 2~3년만에 개인전을 열고 신작 발표를 하는 것과 달리, 윤병락은 매년 똑같은 사과로 승부를 건다. 지겨울법도 한데 이상하게 신선하다는게 특이하다.
"요즘은 브랜드 만들기 쉽지 않잖아요. '사과 작가'라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걸 떨칠 필요는 없죠. 그안에서 변화를 주고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래서일까, 매년 나오는 '윤병락 표' 사과는 탐스러움을 넘어 SF 영화처럼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얼굴만한 사과한알이 튀어 나올 듯하고, 나무 궤짝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듯한 입체감도 보인다.
사과를 전시장에 건 노화랑 노승진 대표는 "올해 사과는 서로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싸우는 것 같다"면서 "모두 잘나게 그려진 사과들이 더 맛깔스럽고 풍요롭게 보인다"며 진짜 사과를 수확한 듯 말했다.
노 대표는 "사과를 샀던 사람들이 계속 사고 또 산다"면서 "사과 그림은 매일 봐도 안질린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그는 "매년 똑같아 보이는 사과지만 매년 다르다"면서 '사과 컬렉터'들도 그걸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사과 그림을 집에 걸어놓으면 부자가 된다'는 풍수 인테리어도 한몫했다.)
작가도 사과 덕분에 '부자 화가'가 됐다.
'사진같은 그림' 실력은 구상화의 본고장 대구에서 연마됐다. 초등학교 2학년때 미술실기대회에서 상을 탄후 화가가 되겠다는 장래희망이 생겼다. 성장한 후 미술공모제부터 격파해나갔다. 경북대 3학년때 제1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93)특선을 시작으로, 1998년 제 18회 '대구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구상 화단에 윤병락 이름 석자를 새겼다.
대학졸업후인 1995년 고금미술연구회 선정작가로 초대되어 첫 개인전을 열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구상화가들 천지인 대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00년에 가마솥뚜껑, 주판, 가위 등 옛 물건을 화폭에 담아내는 '보물찾기'시리즈를 발표하며, 극사실화를 이어나갔다.
'그림 좀 그리는 사람' 에서 '사과 작가'로 변신한 건 2004년. 당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첫 참가는 그를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작가로 만들었다. 그림을 걸자마자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국내 미술시장 최대 호황(2006~2007)과 맞물려 '없어서 못파는 그림'이 됐다.
2007년 옥션에서 30호짜리 '풋사과'가 1250만원에 낙찰되면서 스타작가 대열에 올라 작품값도 뛰기 시작했다. 2006년 호당 15만원선에서 불과 1년만인 2007년 25만원으로 급상승, 유명 중견·원로작가들의 작품값을 눌렀다. 불과 10여년전 미술시장은 젊은작가들의 대반란시기였고 윤병락도 그 열풍을 움켜진채 승승장구했다.
그에게 기적을 선사한 사과는 고향이 준 선물이다. 사과로 유명한 경북 영천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사과는 몸에 박혔다. '좋아하는 것을 그려볼까' 하며 선택한 사과는 '이브의 사과'가 됐다. 사과보다 더 사과같은 그림은 외면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으로 미술애호가들을 홀리며 윤병락을 '사과 작가'로 만들었다.
'스타는 망하기 위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미술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뜨겁게 부상한 많은 스타 작가들이 사그라들었다. 젊은 작가들에게 '돈 맛'은 무한 리필되지 않았다. 팝아트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림도 유행을 탄다. 극사실화·하이퍼리얼리즘이 뜨면 이후 추상화가 뜬다. 수십년간 반복됐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단색화가 느닷없이 뜨면서 미술시장이 정리가 됐다. 지난 몇년간 단색화만 그림인 양 국내외 미술계와 옥션에서 대접받았다. 이중섭 박수근 시대에서 김환기 시대로 넘어간 배경이기도 하다. 덕분에 화랑과 작가들이 '손가락만 빨고 있다'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사과 작가'는 살아남았다. "아직도 찾는 사람이 많아 주문(2년치)이 밀렸다."
윤병락에게 사과는 '밥벌이'다. 밥먹듯 사과를 그렸다. 포도농원을 운영한 부모님의 땀방울을 보며 '노동의 신성함'을 체득한 그는 농부처럼 작업했다. 가장으로서, 전업작가로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해법은 성실함이다. 매일 똑같이 끊임없이 그릴 수밖에 없다. 반복은 디테일에 힘을 준다. 그래도 "사과는 그리면 그릴수록 어렵다"고 했다.
빨강과 녹색의 사과는 상큼하고 환하게 빛난다. 너무나 생생해서 꺼내서 먹고 싶을 정도다. 진짜 사과같아 놀라움을 선사하지만, 작가에게 '미술은 마술'이다. 얼굴만한 사과들을 채워 거대한 스케일로 압도하는 그림은 재현과 모방을 넘어선다.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로 보이지만, 기계적인 그림은 아니다. 매끈하게 처리되는 극사실화는 붓터치를 없애는데, 그는 터치를 살린다. 그래서 사과의 결이 보이거나 나무의 결이 보여 손 맛이 난다.
서양화지만 동양화기법이 융합됐다. 캔버스가 아닌 한지에 그려내 스며든 색감의 무르익었다. 작가는 패넬(화판)을 톱으로 잘라 윤곽을 정한 후 그 위에 삼합 장지를 부착한 다음 메디움으로 칠해 바탕 처리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천으로 이루어진 캔버스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장지에 유채를 사용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유채물감으로 그렸는데도 매우 투명해 사과의 신선도나 실재감이 고취된다. 맑고 깨끗한 색채와 표면처리는 작가의 노동집약적인 손맛 덕분이다.
동양화처럼 위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처리, 벽에 걸린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사과가 쏟아질 것같은 긴장감을 전한다.
사과들은 캔버스안에서 바글거리지 않는다. 4각의 그림틀을 벗어나 전시장 벽면을 캔버스로 활용한다. 사과 상자와 사과 자체를 트리밍 하듯 오려서 그대로 벽에 걸었다. 그러니까 사과 궤짝이 땅바닥에 놓인 것처럼 전시장 흰 벽이 사과그림의 무한공간이 되는 셈이다. 나무 궤짝에서 굴러 떨어진 듯한 사과를 조금 떨어진 거리의 벽에 걸거나, 혹은 전시장 바닥에 놓아두는 공간 연출력이 가능해, 사과 궤짝에 담긴 진짜 사과를 보는 듯한 생생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전한다.
그의 '사과 그림'에 대해 평론가들이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재현 회화를 벗어났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예술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도구'라고 했다. 그림만으로 기억을 재생할 수 있게 해주고, 우리의 삶을 빗대어 보여준다. ('사과 그림'은 내게 어린시절로 돌아가게한다. 허리춤에 사과를 슥 문지른 후 아삭 한 입 베어물던 아빠의 등 뒤엔 엄마의 잔소리도 쏟아진다. '왜 또 씻지 않고 먹는거야~ 애들이 따라한다고~'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눈을 찡긋하던 지금은 없는 아빠의 모습이 재생되어 그리움을 전한다.)
미술평론가 서성록은 "그의 그림을 보고서야 우리는 매일같이 대하는 사과가 얼마나 근사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멋진 세상에 살고 있는 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사과 그림'은 일루전을 넘어서 현실을 넘보고 현실과 겨루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작가는 현실적이다. "사과 때문에 나도 밥먹고 살게 됐고, 자리를 잡았다. 이걸 통해서 행복을 찾는거다."
윤병락은 "사과 그림을 산 사람들이 매일 볼때마다 기분 좋다고 하고 새롭다고 하니까, 나도 행복하다. 그래서 더 신나게 그린다"고 했다.
그동안 1000점을 그렸다. 새로움에 대한 압박감은 있지만 매너리즘은 없다. 변덕부리지 않은 사과처럼 작가도 의리맨이다. "사과는 계속 그리겠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올 여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그려낸 2m가 넘는 대작 10점 등 20여점을 전시한다. 먹을 수 없어 더 비싼 사과다. 작품값은 100호(160cm×130cm) 크기가 4200만원이다. 전시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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