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3분기 국내인구이동 등 통계 분석
은평·노원·강동, 市외곽 1000명이상 순유출
고양·남양주·의정부·구리 등 경기지로 전출
서대문·마포·종로 등 도심에서 전입 이주多
전문가 "젠트리피케이션…계층간 주거격차 발생"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화곡동에서 보낸 A씨는 IMF경제 위기때 아버지가 직장에서 퇴직당하고 강서구쪽에 가게를 내면서 온가족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대학졸업후에도 화곡동에 살아온 그는 정든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아 결혼을 앞두고 가까운 지역의 아파트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최근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형편에 맞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내를 설득해 신도시 이주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출퇴근이 걱정이다. 도시철도가 생긴다는 소식은 유일한 위안이다. 다만 매일 1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서울을 오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장래 아이가 자랐을때 교육도 걱정이다. 십년내 서울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자신은 없다. '서울을 등진게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아직도 머리를 맴돈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근 1년간 서울을 떠나 다른 시·도로 이주한 사람은 38만9056명.
같은기간 35만8036명이 상경했지만 서울 인구는 3만1020명이 순유출됐다.
주민등록상 서울 인구는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2년 1093만5230명을 정점으로 지속 감소중이지만 인구유출은 2011년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 2016년 5월에는 999만5784명으로 '서울 인구 1000만명' 시대를 마감했다. 올해도 순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9월 현재 979만3003명까지 줄었다.
전문가들은 서울 인구 감소의 배경에 경기지역 대규모 택지지구 조성 등 신도시 개발과 광역교통망 확대 등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은 지금 토박이조차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의 '미친 집값'을 감당못해 서울의 외곽으로, 외곽에서 다시 가까운 경기도로 방랑중이다. 이른바 '인구 도미노'다.
28일 통계청의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서울 집값이 폭주한 올해 3분기(7~9월) 서울 자치구별로 시도간 순유출(전출-전입) 인구를 보면 은평이 112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노원(1071명), 강동(1010명), 중랑(857명), 양천(827명), 강서(741명), 송파(657명) 순이다.
학군 이사수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양천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 외곽지역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들 지역은 서울내 다른 자치구에서 이주를 많이 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같은 자료에서 3분기 시도내 시군구간 순유입(전입-전출)인구는 송파구가 915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강서(629명), 은평(488명), 성동(428명), 동작(356명), 중랑(345명) 순이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의 인구는 어디로 빠져나가고 어디서 유입되는 것일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운영하는 부동산정보 포털서비스 '씨:리얼'이 분석한 인구이동분석 통계에 따르면 은평구 거주자가 최근 1년간(지난해 9월~올해 8월까지) 가장 많이 이주한 지역은 경기 고양시(8622명)다. 이어 서대문구(3574명), 마포구(1873명), 파주(1517명), 김포(1107명) 순이다.
반면 인구 유입은 서대문(5700명)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고양시(4078명), 마포구(3296명), 종로(1242명), 강서(1026명) 순이다.
은평구 거주 인구중 일부가 경기권으로 빠져나가고 서대문·마포·종로·강서 등 인근 자치구에서 인구가 새로 유입된 것이다.
노원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근 1년간 노원 거주자가 가장 많이 이주한 지역은 경기 남양주(4140명)와 경기 의정부(3871명)다. 반면 전입 인구는 근처 도봉(3552명), 성북(3442명), 중랑(3009명) 순으로 많았다.
강동 역시 인근 하남(8583명)으로 전출되는 인구가 가장 많다. 남양주로도 2944명이 이주했다. 반대로 유입 인구는 송파(5573명)가 가장 많고, 하남(2351명), 광진(1867명) 순이다.
중랑구도 거주자 전출은 경기 남양주(4382명), 경기 구리(3913명) 등에서 많이 일어나고 유입은 노원(3248명), 동대문(2932명), 광진(2913명) 등에서 이뤄졌다.
강서는 김포(7150명)나 부천(2732명), 고양(2714명) 등 경기지역 전출이 많고 전입은 양천(7733명), 영등포(2946명) 등 인근 자치구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
강남3구의 경우도 매 한가지다.
최근 1년간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강남에서 성동과 강동으로 각각 3659명과 1634명이, 서초에서 동작으로 5404명, 강남과 서초에서 송파로 각각 9435명과 2579명씩 이주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강남3구의 경우 인구유입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아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했다. 강남구의 경우 전입은 서초(6571명), 서초구는 강남(8121명), 송파는 강남(9435명)에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은 뛰는 집값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용산의 경우 KTX역을 잇점으로 오랜기간 서울외 시도에서 인구가 꾸준히 유입됐다. 하지만 이번 3분기 들어 53명 순유출로, 전분기 54명 순유입에서 전환됐다. 용산 집값은 지난 3분기 2.9%(105.3→108.4)로 상승해 영등포(3.7%), 동작(3.1%)에 이어 3번째로 상승률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주거의 '하향 여과'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이 정숫물이 필터에 걸러지듯 여과된다는 것이다.
주거비 부담에 시 외곽에 살던 인구는 경기지역에 대규모 택지지구 개발이 끝나자 이주한다. 대규모 단지 입주로 쏟아지는 싼 전셋집을 쫓아 빠져나가는 셈이다. 반면 도심 거주민은 이들의 떠난 빈자리를 채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돼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도심에서 주거비를 견디지 못하자 싼 주거지를 찾아 끊임없이 주거의 하향 이동을 택하는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집값이 치솟으면서 주거비를 견디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생기고 있다"면서 "주택가격이 너무 올라 생긴 부담감에 일부는 경기도에 주택을 마련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고양시 원흥·삼송지구, 하남 미사지구, 남양주 다산신도시 등 거주 선호도 높은 택지지구로 분양을 받아 나가는 인구가 일부 포함됐을 수 있지만 서울 거주민은 경기지역 아파트 청약 우선순위에서 지역민(30%)과 경기도민(20%)에 뒤쳐지기 때문에 이 같은 인구이동은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결국 서울의 높은 주거비 부담은 도심과 시 외곽,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등 거주지역간에 서열화, 계층화,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 인구 도미노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도권에 3기 신도시를 포함 30만호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도권 거주자는 서울시민과 경기도민 사이에서 또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기지역의 교통, 교육, 문화 등 인프라 문제 때문이다.
박 위원은 "서울 집값 후유증이 앞으로 진정되면 다시 경기도에서 서울로 회귀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면서 "집값 항배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권 교수도 "결국은 교통, 교육 등이 얼마나 갖춰지느냐"라며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이 아니라면 오히려 미분양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인프라에 대한 고민 없이 서울 외곽에 대규모 택지만 개발하는 것은 서울의 공급 부족 논란과 관련해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서울-경기간 계층 양극화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대상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서울은 점차 1인가구 중심으로 세대 구성이 변하고 있다"면서 "반면 (재건축·재개발이 위축되면서) 주택 노후화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새 아파트를 찾는 수요는 꾸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함 랩장은 이어 "2인이상 가구가 경기권으로 유출되는 경향성도 관찰되고 있어 수도권 3기 신도시 계획 등과 맞물리면 추가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며 "추세성을 가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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