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SNS에 '탈코르셋' 사진 올렸더니 마구 퍼가
원색적 외모비하, 욕설, 성희롱 댓글 다는 남성들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왜 조롱을 당해야 하나'
법적 대응 시도해도 수사기관 "고소 요건 안 돼"
"젠더 갈등 결합된 온라인 공격도 형사처벌해야"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우려…규제엔 신중" 반론도
#2. 대학생 김희연(26)씨도 탈코르셋 인증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한 이후 자신을 겨냥한 다수의 비방성 댓글을 발견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X걸레같이 생긴 고아X', 'XX, 생긴 건 상평통보 두 닢 짜리' 등의 댓글이 쓰여 있었다.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에 나선 여성들이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온라인 댓글과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인증사진이 온라인상에서 무단으로 재유포되거나 원색적인 외모 비하, 성희롱적인 댓글 등으로 인한 피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부여 여성성 거부' 탈코르셋 운동…"사진 조롱에 몸살"
탈코르셋이란 사회에서 부여한 '여성성'을 거부한다는 취지의 운동으로 몸을 조이는 속옷인 코르셋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여성들은 SNS에 민낯과 짧은 머리카락, 안경을 착용하거나 화장품을 폐기한 사진 등을 게시하며 탈코르셋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탈코르셋 사진을 올린 여성 중 일부가 자신의 사진이 변형된 형태로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조롱 또는 비방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사진이 유포된 이후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SNS를 방문해 악성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현수(20)씨는 지난 5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탈코르셋 인증 사진이 모자이크된 채 인터넷 카페에 재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이씨는 "게시물을 찾아보니 욕설이나 비방 댓글이 여럿 달려 있었다"며 "그 사진을 보고 내 인스타그램을 찾아와봤다는 사람도 있어 무섭고 힘들었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탈코르셋 인증 사진을 동의 없이 유포하거나 악성 댓글을 올린 이들에 법적 대응을 시도한 여성들도 있지만 작성자 적발이나 처벌 등 사법처리가 어려운 건 물론,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여성들은 의심한다.
김희연씨는 "악플을 추려서 누리꾼 7명을 고소했는데 벌금형 조차 받지 않았다"면서 "내가 느낀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도 없다고 하니 법이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씨 역시 "경찰조사 과정에서 얼굴이 모자이크된 사진이라 처벌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모르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찾아보면 저인 줄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졌다"라고 한탄했다.
김한나(21)씨 역시 탈코르셋 인증 사진이 도용돼 경찰서를 찾았으나 고소할 요건이 되지 않아 처리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씨는 "나는 피해자인데 과연 이들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비방성 게시물 또는 댓글의 경우에는 형법상 모욕죄나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명예훼손)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쉽지 않다. 탈코르셋 인증 사진을 재유포한 경우, 대부분 얼굴 등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있다는 이유 등으로 처벌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현재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사진을 도용당한 이들은 사진을 유포하거나 악성 댓글을 단 누리꾼의 형사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모욕과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명확성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자들을 일률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탈코르셋 인증 사진에 대한 비방성 게시글과 댓글 등 젠더 갈등과 결합된 온라인 표현들은 최근 그 수위가 높아져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대응방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먼저 다른 성별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성적인 관심, 성추행 위협 등에 대해서는 온라인 댓글이라도 성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성 문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이들은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댓글의 경우에는 민사 소송과는 별개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통한 사법 처리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적용할 경우에는 게시자가 특정이 되더라도 온라인에서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성폭력 특례법을 개정하는 것이 성적인 내용이 담긴 온라인 댓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성폭력 특례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정보통신망법에 성적 희롱에 관한 내용을 별도로 넣는 방식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들은 불쾌감을 넘어 성적인 공격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작년에 남성 일부가 여성 유튜버의 집까지 찾아간 사건도 있었다"며 "혐오 표현 가운데서 일반적인 주장을 넘어가는 경우에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반면 온라인상 성적 혐오의 심각성에는 공감하지만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특정 표현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된다는 입장도 상당하다. 비방성 댓글을 처벌할 현행법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별도의 법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여성 변호사는 "성적 묘사가 심하거나 성폭행을 예고하는 등 그 수위가 심한 경우라면 성폭력 특례법을 적용할 여지는 있는 부분이지만 해당 경우라면 당연히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도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욱이 댓글 표현에 성적인 목적이 있었는가의 여부도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과 관련한 혐오 표현이 집단화가 되어 사이버 테러를 하는 식이 된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표현 그 자체만을 별도로 명시하는 방식의 입법은 많은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를 바로 침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폭력 특례법에 온라인 성혐오 표현을 추가하자는 것이 불가능한 주장은 아니다. 어떤 행위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받아들일 경우에는 특별법에 조항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원 교수는 이어 "지속적인 혐오 표현을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를 통해 계속 전송하는 것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정보통신망법이 바뀐 것도 SNS가 발달하면서 였다"라며 "다만 사회적 문제를 받아들이고 이를 현실에 반영하는 것은 결국 입법 차원의 문제다. 그 전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 선결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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