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소력 짙은 그녀의 목소리는 시대 변화의 선봉에 섰다. 정확한 음정으로 고음과 저음을 유려하게 넘나들면서도, 청중이 감정을 이입할 여백을 주는 풍성한 울림 덕분이었다.
이런 프랭클린을 상징하는 대표곡은 '리스펙트(Respect)'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약간의 '존중'뿐"이라고 노래하는 이 곡은 영향력이 지대했다.
미국 솔 가수 오티스 레딩(1941~1967)이 1965년 발표한 앨범 '오티스 블루' 수록곡이다. 흑인에 대한 인권 존중 요구와 맞물린 이 곡은 프랭클린의 목소리를 타고 공전의 히트곡이 됐다.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의 민권운동을 가리키는 '공민권운동'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레딩이 자신의 곡을 프랭클린이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가창력의 프랭클린 버전 '리스펙트'를 거부할 수 있는 청자는 많지 않았다. 덕분에 흑인 중심의 솔 음악은 백인 청중들 사이로까지 파고들 수 있었다. 아울러 남성 가수에 비해 덜 존중 받았던 '여성' 가수인 프랭클린이 이 곡을 불러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적'인 해석도 더해졌다.
프랭클린이 부른 또 다른 대표곡 '(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어 내추럴 우먼'도 '당당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멜로디로 증명한 '노래 서사'의 승리로 기억될 만하다.
이처럼 프랭클린은 가수가 보컬의 탁월함으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역사의 보기였다.
1942년 멤피스 출생인 프랭클린은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뒤 열 네살의의 나이에 가스펠 가수로 데뷔했다. 열 여덟살의 나이로 솔 가수로 전향하면서 가창력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의 가창력을 증명한 대표적인 예로는 1988년 그래미상 시상식도 있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특별상 수상자로 참석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를 부를 예정이었는데, 건강 상의 이유로 불참하게 됐다.
순서 자체가 펑크가 날 위기였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현악과 밴드 세션이 파바로티의 음역에 맞춘 키대로, 솔 풍으로 이 곡을 해석해 큰 환호를 받았다. 악보와 가사를 외우고 반주를 맞춰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5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미상을 18차례 받은 프랭클린은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명'(100 Greatest Singers of All Time)의 맨 위에 프랭클린의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개방적인 태도로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존경을 받고 영감을 주기도 했다.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의 대모였으며, 팝스타 조지 마이클(1963~2016)과 듀엣으로 '아이 뉴 유 워 웨이팅(I Knew You Were Waiting)'을 녹음했다.
R&B 스타 존 레전드(40)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보컬이 세상을 떠났다", 세기의 밴드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76)는 "생전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준 솔의 여왕이다. 음악가로서 훌륭한 위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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