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정원 협조 요청 거절 어려웠을 것"
국고손실·뇌물 혐의 '증거 부족' 등 이유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8일 이 전 청장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등 혐의 선고기일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를 인식했을 것"이라며 징역 8년에 벌금 2억400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자금 추적 사업 추진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런 (정치적 의도) 의심만으로 이 사건과 같은 정보수집 활동이 국정원 직무범위를 완전히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국가기관 입장에서 협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국정원 내부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 없고, 정치적 공작에 대한 구체적 범행 전반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며 "일명 데이비슨 사업에 대해 원 전 원장과 피고인이 구체적 대화를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김승연(59)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 등 관련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 유죄는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정도로 확신할 수 있는 증명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이런 증명이 없는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청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 관련 해외정보 수집을 제공하도록 승인한 건 맞지만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 전 청장도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누를 끼쳐 참담한 심정이지만 혐의에 대해서는 떳떳한만큼 재판부에서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청장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원세훈(67) 전 국가정보원장 등과 공모해 김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 소문 추적 비용으로 해외 정보원에게 14회에 걸쳐 총 5억3500만원 및 5만 미국달러를 지급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1년 9월께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은 김 전 국장에게 국세청장 접견실에서 비자금 추적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1억2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이 전 청장 측은 뇌물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했다.
원 전 원장 등은 당시 김 전 대통령 비자금 소문 추적에 '데이비슨'이라는 사업명을 붙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 3월 이 전 청장을 기소하면서 "애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실체가 없는 풍문 수준에 불과했다"며 "국정원 직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특수활동비가 지속해서 사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비자금 추적에 대북공작금 약 1억6000만원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종흡(69) 전 국정원 3차장과 김 전 국장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3년, 4년이 구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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