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행사 안 가"…양승태 행정처 '삐친 아이'식 대응전략

기사등록 2018/07/31 17:00:53

압박 위해 '양승태, 변호사대회 축사 안 해'

두번째 안이 '축사 하시되 경고메시지 전달'

"기자 이용, 변호사 평가제 기사 내보내자"도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중 비공개됐던 문건들을 31일 공개했다. 사진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18.07.30.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양승태 행정처'는 치밀하면서도 유치했다. 상고법원을 위해서라면 마치 자기 말 안 들어줬다고 단단히 삐친 어린 아이 같은 행태마저 궁리했다.

 이 같은 모습은 31일 대법원이 추가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중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압박 방안 문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날 공개된 '대한변협에 대한 대응 방안 검토'(2015년 4월17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문건에서 행정처는 '압박 수단 활용 시 유의할 점'으로 ▲수단의 장·단점 및 부작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필요 - 사법부 위신에 손상을 주거나 역공의 우려가 있는 방안은 부적절 ▲'전체' 변호사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부적절 ▲국민들이나 제3의 기관에 피해 또는 반발을 살 수 있는 방안은 부적절 등을 제시했다.

 준비는 이처럼 꼼꼼했지만 실제 방안들의 수준은 졸렬하다 싶을 정도로 낮았다.

 대표적인 게 '추가 검토 필요한 방안' 중 하나로 기재돼 있는 '변호사대회(8월 개최 예정) 불참(대한변협 주최 행사 전면 불참)'이다.

 행정처는 '대한변협 매년 8월 말 변호사대회 개최(대한변협의 가장 큰 행사)' '대법원장님께서도 참석하셔서 축사를 하심'이라면서 '대법원장님 불참'(1안), '참석은 하시되 축사에서 경고메시지 전달'(2안)이라는 두 개의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한 긍정적 효과는 '대한변협의 연중 가장 큰 행사→강력한 타격', 부정적 효과는 '대법원-대한변협 갈등 부각→ 대한변협의 존재감 부각' '헌법재판소장, 법무부장관 등 다른 기관의 장이 참석하는데 대법원장님만 참석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다는 외부 비판 받을 우려'였다.

 이 방안은 실천으로도 옮겨졌다.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은 지난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2015~2016년 연속 변호사대회에 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행정처는 특정 언론사 기자에 대해 '이용'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변협 압박에 동원하려고도 했다.

 행정처는 모 종합일간지 박모 기자가 2015년 3월 대한변협신문에 변호사 평가제 도입을 주장하는 칼럼을 쓴 것을 거론하면서 '시행방안'으로 'OO일보 박OO 기자 등 이용→법원이 변호사 평가제 도입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내보냄'이라고 밝혔다.

 2014년 9월1일 역시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대한변협 압박방안'에는 변협이 대법관 증원 결의문을 채택한 것 등에 대해 "대법원도 이제는 화해적 시도와 노력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대한변협을 압박하고 제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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