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손지윤, 배역들의 저글링···연극 '창문넘어도망친100세노인'

기사등록 2018/06/11 08:17:00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배우 손지윤(왼쪽), 이진희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타스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8.06.1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57)의 베스트셀러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한국의 창작진을 통해 연극으로 거듭난다.

'더 헬멧' '카포네트릴로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 대학로에서 '지탱' 콤비로 통하는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신작이다.

 12일부터 9월2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무대에 오른다. '킬롤로지(killology)'에 이은 '연극열전 7'의 두 번째 작품이다.

2009년 출간 이후 35개국에서 1000만부 이상 판매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세 생일에 잠옷 차림으로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이 주인공이다.우연히 갱단의 돈가방을 훔치면서 펼쳐지는 황당한 에피소드와 과거 100년 동안 의도치 않게 근현대사의 격변에 휘말리는 모험이 교차된다. 2013년 동명 영화로도 개봉했다.

연극에는 알란이 태어난 1905년 5월2일부터 2005년 5월1일까지 세계 곳곳에 만난 사람들뿐 아니라 코끼리, 강아지, 고양이까지 약 60여 캐릭터가 등장한다. 5명의 배우가 이 역들을 소화하기 때문에 1인 10역 가량을 선보인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쉴 새 없이 연기해야 하므로 '캐릭터 저글링'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붙였다. 배우의 감각적 센스와 민첩함은 필수다.

대학로에서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인 이진희와 손지윤은 "제가 가진 한계에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들어요"라며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입 모아 말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배우 손지윤(왼쪽), 이진희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타스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8.06.10.   chocrystal@newsis.com
진희는 '톡톡' '킬 미 나우' '프라이드' 등에서 코믹과 진중함을 넘나들며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여왔다. 손지윤은 '더 헬멧' '글로리아' '수탉들의 싸움' 등 실험적인 작품에서 통통 튀는 연기력을 뽐내왔다.

그럼에도 여러 캐릭터를 한 작품에서 제대로 동시에 맡는 것은 처음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진희는 알란을 찾아나서는 경찰관 '아른손 반장'을 비롯해 김일성, 통역원, 연구원, 강습생 등을 연기하는 '알란 1' 캐릭터다. 남자 배역도 가리지 않는다. 손지윤은 갱단의 보스를 비롯해 원장, 경비병 등 사람 캐릭터는 물론이다. 코끼리까지 연기해야 하는 '알란 3'을 맡았다. 
 
이진희는 "굉장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마다 차별점을 둬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손지윤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캐릭터를 맡다 보면, 과장하고 희화할 수 있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구나 알란3은 남자 배우인 이형훈과 더블캐스팅이다. 그녀는 "캐릭터마다 서사의 적정성의 힘을 갖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배우 손지윤(왼쪽), 이진희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타스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8.06.10.   chocrystal@newsis.com
무대와 객석을 코앞에 붙이는 것은 물론 공간을 옮겨 다니며 공연하는 지탱 콤비의 작품은 배우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진희와 손지윤 역시 긴박하게 다역을 돌아가며 연기해야 하는 이번 작품이 "배우들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작품 같다"고 눙쳤다. 

1인 다역의 작품은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캐릭터 저글링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표현에서 보듯, 모든 캐릭터가 맞물리는 호흡에서 자칫 한 순간이라도 틈을 보이면, 유기성은 산산조각나는 구조다. 

이런 상황은 배우들에게 스트레스인 동시에 자극이 된다. 이진희는 "두 분 작품에 출연하면 두려움이 커요. 그래서 많은 준비를 하게 되죠. 다른 공연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큰 도전 정신을 일깨운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인데, 이런 시도를 하는 김 연출과 지 작가 또한 자신들과 같은 라인에 서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배우 손지윤(왼쪽), 이진희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타스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8.06.10.   chocrystal@newsis.com
이진희는 원작을 읽었고, 손지윤은 읽지 않은 채 연습에 임했다. 이진희는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한 알란이 지도자를 만나든, 핫도그 장사를 만나든 항상 그 사람 자신으로 대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봤다"고 전했다.

다만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불러 오는 순간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님, 연출님과 연극에서 그런 부분이 부각되지 않도록 고민 중"인 이유다.

손지윤은 이번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 중 유일하게 작품을 읽지 않았다. 창작진이 작품을 끝까지 읽지 말아달라고 청했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이 작품을 봐도 이해가 가는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배우는 '톡톡'에 함께 출연했으나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 무대에 동시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대가 넘으면 출연 작품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여배우들의 현실에서 동년배가 있다는 사실인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그간 여자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도구적이었는데 최근 대학로에 이런 소비적인 여성 캐릭터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눈에 띄는 데는 이들 동년배 배우의 활약이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배우 손지윤(왼쪽), 이진희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타스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8.06.10.   chocrystal@newsis.com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전쟁과 냉전으로 세계가 양분된 20세기에 다양한 격변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이념과 체제, 종교나 젠더, 사회적 통념이나 평가 등 기존의 가치관에 구애 받지 않는 노인이 감동의 여운을 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더 헬멧' '글로리아' '수탉들의 싸움' 등에서 딱 부러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온 손지윤은 "치열하게 캐릭터 경쟁을 하면서 버텨온 것 같은데 최근 주체적인 여성 중시의 작품과 캐릭터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다"고 봤다.

죽음을 앞둔 오빠와 장애를 지닌 조카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킬 미 나우'의 트와일라 등 주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온 이진희도 "무의식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판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이선 작가님과 '연극열전'의 허지혜 대표님 등 덕분에 여자 캐릭터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 연극계에서 대단하게 무엇을 바꿔나가겠다는 것 아니에요. 부딪히면서 스스로 알게 된 것은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제 안에서 지진이 생겼고 그로 인해 스스로 변화했다는 것이죠. 이런 구조적인 변화를 환영합니다."

이진희가 최근 더 놀란 부분은 "여자 관객들이 이런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짚어준다"는 점이다. 손지윤은 "그런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응원이 저희에게도 힘이 되고 좋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죠. 그런 캐릭터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라고 바랐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