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SD 첫 패소에 당혹…"후속조치 신중히 검토"

기사등록 2018/06/08 18:03:24 최종수정 2018/07/04 11:36:06

채권단 비용 청구설엔 정부-캠코-우리은행 '눈치'

소송과정에서 정부 안일한 대처 논란 일 듯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외국 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소송에서 지난 7일 정부가 처음으로 패소함에 따라 소송 당사자인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란계 가전기업 엔텍합 인더스트리얼그룹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무산과 관련, 한국 정부가 엔텍합 대주주 다야니가(家)에 730억원 상당을 물어야 한다는 국제 판정이 나온 것인데 소송 과정에서 정부 대처가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중재판정부는 6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청구금액 935억원 중 약 730억원 상당을 한국 정부측에서 다야니 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지난 2010년 4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은 대우일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엔텍합을 선정, 5778억원의 금액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다야니는 578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지만 2010년 12월 채권단은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2011년 6월 다야니는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며 법원은 11월 채권단이 계약금 중 엔텍합의 외상물품대금을 제외하고 약 266억원을 반환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2012년 2월 법원에서 채권단의 계약 해지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15년 9월 다야니는 UNCITRAL에 중재신청서를 접수했다.

다야니는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대우일렉 매각 과정에서 몰취당한 계약금 578억원 등 약 935억원 상당의 보증금 및 이자를 청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금융위를 포함해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산업부 등 관계부터는 합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측 대리로펌으로 영국 프레시필즈(Freshfields) 및 법우법인 율촌을 선정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결국 패소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승소 확률이 높다는 해외 로펌 등의 말만 듣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정부는 패소 원인 등 소송 결과와 관련해 일체 함구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재판정문을 면일하게 분석하고 중재지법에 따른 취소신청 여부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검토해 나가겠다"며 "패소 원인은 이번 사안의 쟁점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 우리 정부의 전략이 노출될 수 있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취소소송 신청 기간이 28일 만큼 내달 4일 전까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패소 결과가 확정될 경우 다야니에 지급해야 할 730억원의 비용 마련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엔텍합 지급 계약보증금은 578억원으로 불어난 이자를 감안한다 해도 150억원 정도를 추가로 조달해야 한다.

정부 내에서 당시 채권단에 청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걸로 알려지면서 대주주 캠코는 소송과정을 자신들이 주도한 게 없다며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캠코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비용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캠코는 2013년 부실채권정리기금 청산을 완료했으며 2015년 제기된 소송의 당사자는 정부다. 실제 모든 과정을 정부가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의 계약금 일부 반환 조정 결정 불수용은 채권단협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이고 이후 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이 내려진 만큼 국내법상 하자가 없었던 걸로 채권단에 책임을 물을 순 없을 것"이라며 "금융위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우리은행 측은 캠코가 40% 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 결정권이 가장 컸다는 전언이다.

시중은행들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돌려주고 깨끗한 상황에서 매각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캠코에서 '배임'에 해당된다며 반대했고, 때마침 이란 제재가 있어서 그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578억원을 우리 임의로 뺄 수는 없고 캠코와 채권단에서 그 돈을 지급하라고 결정하면 뺄 수 있다"며 "결국 캠코가 주채권 기관으로서 영향력이 가장 크고 그곳 결정에 따라 자금 사용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위 측은 "현재 중재판정에 대한 법률 검토 및 영국중재법상 취소 신청 여부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검토해나가는 중"이라며 "소송 관련 비용 문제는 향후 중재판정이 확정된 이후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lovelypsych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