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 테이블로 이끌 명분과 분위기 조성 역할 남아있어
"지금보다 10배 이상은 중재해야 현 상황 봉합 가능" 관측도
먼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가려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회담 전격 취소에 1차 제동이 걸렸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을 두고 우리 측의 중재 역할 한계, 백악관 정세 파악 부족이란 지적마저 나왔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25일 싱가포르 회담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언급했다. 북미가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이 다시 살아나는 상황에서 두 정상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적극 중재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제시됐다.
그러던 와중에 26일 오후에는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두 정상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밝히기로 했지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놓고 양측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 대통령이 불과 4일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가졌던 대화 내용을 비롯해 북한과 중국에 대한 생각 등을 김 위원장에게 전했을 수 있고 김 위원장은 이를 경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가 가장 궁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모종의 부탁을 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하기 어려운 만큼 문 대통령을 통해 북측의 입장이나 견해를 미국 측에 설명해달라고 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 그간 강조해온 북미간 중재자 업무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셈이다.
실제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국면을 만들고, 남북 정상회담을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연계하려던 축적된 경험이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미간) 소통 자체에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노력하고 있다"면서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 재개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우리 정부가 힘쓰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과정에 문 대통령의 역할이 특히 중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며 북한 태도 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북한에 '굽히고 들어오라'는 이야기인데, 북한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며 "결국 북한이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고 '남한 대통령 때문에 내가 회담에 나가준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 있는 거리를 문 대통령이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결정하기 전에는 밑에서 아무도 거리를 못 둘 것"이라며 "쉽게 말해서 '굽히고 들어가는 식'으로 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전화를 하든지 편지를 보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문 대통령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중재 기회가 예전보다 더 커진만큼 위기 요인도 클 것이란 전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라는 강경 발언과 이를 철회할 수도 있는 듯한 언급을 하루 걸러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정상이 전격 회동했다면 누가 보더라도 문 대통령이 결렬 직전까지 갔던 북미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만일 북미 양측이 이견 조율에 실패해 회담이 난관에 봉착한다면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도 미국과 북한을 오가면서 무슨 역할을 수행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게 된다.
이와 관련 통일연구소 홍민 연구위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우리나라가 북미 중재 역할을 지금보다 10배 이상은 해야 (현 상황을) 간신히 봉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미 관계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판이 (완전히) 깨지게 되면 가장 피해가 크고 위험부담이 높은 쪽은 우리나라다. 이 과정 전체를 설계하고 중재하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미간 신뢰를 결속하려는 중재 노력이 실패해서 북미가 극한 대립으로 간다면 우리나라의 지렛대 역할은 더이상 힘들다. 우리나라는 한반도 문제에서 갈등 국면을 봉합할 힘을 못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면서 "일단 남북관계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한다는 역사적 의미 차원에서라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것까지 막힌다면 정말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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