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한국펜화가협회전 참가, 2점 출품
박교수 "정밀함 최고 외과의사들 도전해볼만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신경 혈관 등 작은 조직도 중요하게 다루는 저 같은 외과 의사에게 펜화나 펜담채화는 어렵지 않게 도전해볼만 합니다."
세계적인 대장암 권위자인 박재갑 국립암센터 명예교수(70)가 두번째 펜화전을 연다. 한땀 한땀 장인정신을 요하는 외과의사로 지낸지 44년째, 그는 이제 칼 대신 펜을 들고 '건강 전도사'로 활약중이다.
지난해 국립암센터안에 위치한 NCC갤러리 동행에서 한국펜담채화가협회 창립 기념전을 연 이후, 올해는 한국펜화가협회전에도 참여했다. 고희에 펜담채화가와 '펜화가'로 전격 데뷔다.
펜화는 0.03mm펜으로 수십만번을 그리고 또 그려야 나오는 그림이다. 또 펜화와 수채화의 느낌이 동시에 나는 펜담채화도 마찬가지. 가는 펜과 불수용 잉크로 윤곽선을 정밀하게 그린 후 수채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으로, 인쇄가 발달하기 전까지 널리 쓰이는 기법이었다. 미술시장에서 창작기법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로 부상중이다.
박재갑 교수가 펜화에 빠진 건, 시간이 넘치면서다. 지난 2011년 국립중앙의료원장 사표를 내니 부인이 "바쁘던 사람이 시간 여유가 생겼으며 그림으로 취미활동을 하라"고 권한게 계기였다.
1974년 서울대학에서 외과 의사를 시작, 1995년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아세아대장항문학회 회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원장 겸 이사회 의장,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간을 쪼개 살아오면서 대장암과 종양 관련 38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25권의 책을 집필했다. 2008년 미국대장항문외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최우수 논문상, 황조근정훈장(2001), 자랑스런 한국인대상(2004), 세계금연지도자상(2005), 대한민국친환경대상(2012) 등을 수상했고 2015년 전국 NGO단체연대에서 선정한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멈춰도 될 시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에 홍익대 평생교육원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다. 처음엔 유화를 그렸다. 당시 홍익대 미대학장이었던 고 이두식 교수의 권유로 2013년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서양화에 이어 비단 채색, 민화를 배우던 중 "펜화와 펜담채의 세밀한 선에 매료됐다."
펜화 최고 권위자 김영택 작가와 펜담채화가 안석준 화백에 사사를 받았다. 그림을 그리니 마지막 화룡정점은 낙관이라는 점을 알고, 그 낙관을 직접 파야 되겠다는 생각에 전각과 서각도 배웠다. 판화는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됐다.
지난해 '한국펜담채화' 창립전에 출품한 강릉 '해운정'은 이번 한국펜화가협회전에도 나온다. "강릉 해운정에는 제 15대 선조인 정절공 박광우 선생님의 시문현판이 있어 소재로 삼게 되었다"고 했다.
해운정은 조선 중종 때 세워진 정자다. 보물 183호로 지정될 만큼 조선시대 목조건물 가운데서도 단연 아름다움을 뽐낸다. 우암 송시열이 현판을 썼고, 율곡 이이가 시문을 남겼다.
박재갑 교수는 해운정에 갈 때마다 거듭했던 감탄을 펜화에 그대로 옮겼다. 서까래와 기와, 건물을 두른 떡갈나무와 소나무 잔가지까지 촘촘히 바늘땀을 놓듯 이어갔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의 그물망에 빠져야 한다.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 꼬박꼬박, 꾸역꾸역 그려야 사진보다 더 정밀한 그림으로 재현된다.
외과 의사로 살면서 몸에 밴 집중력과 정교함이 힘이 됐다. 특히 "선조가 남긴 뛰어난 유산을 화폭에 담는 일은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어서 고통보다 힐링이 됐다.
오는 4~10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여는 한국펜화가협회전에는 42×32cm에 인왕산 까치와 호랑이를 야심차게 담아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3일 새벽 6시 박 교수가 한국펜화가협회전에 참가한다며 SNS에 호랑이 그림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대화는 급기야 인터뷰가 됐다.
그림은 화가를 닮는다. 눈을 똑바로 뜨고 맹렬하게 버티고 있는 호랑이가 박 교수를 닮았다 하자 그는 곧바로 이렇게 보냈다. "제 페이스북에 들어오시면 3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이 100여개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호랑이 작품에 대한 의미도 길게 이야기했다.
"이번 제 호랑이 작품명은 원래는 '호작도'인데 뜻을 모르는 분들도 있어 이해하기 쉽게 '인왕산 까치와 호랑이'로 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앞으로 제가 더 진행할 펜담채화와 민화 각 각 두 그림의 밑 그림으로도 활용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호랑이는 임금이고 까치는 백성입니다. 이 호랑이는 제가 2014년 9월부터 파인 송규태 화백님께 민화를 배우며 호작도를 그리려 한국 호랑이. 사진을 여러장 받아 구상하던 중 작년에 2011년생 숫컷 '계룡'이의 자태가 마음에 들어 인왕산과 함께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여러가지 숨은 식물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호랑이 그림은 만 3년이 걸렸다. 틈틈히 조금씩 그리다가 전시일을 뒤 늦게 알고 한달간 더욱 몰입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저녁마다 작업했다."
그는 "민화를 배우고 창작 현대 민화를 그리려 마음 먹고 공개하는 첫 작품"이라며 오랜시간 호랑이에 공들인 점을 강조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지켜온 신앙과 같은 상서로운 서수"라고 "일본이 포수를 동원하여 말살시킨 호랑이를 이제는 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박재갑 교수는 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32년을 마친 뒤, 자신이 세워 초대 원장을 지냈던 국립암센터로 돌아와 현재명예교수로 지내고 있다.
명함도 이색적이다. 목을 꺾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캐리커처와 함께 '담배제조 및 매매금지, 운동화 출근 생활속 운동, 건강검진'이라는 글이 이름위에 적혀있다.
암 예방을 위해 금연운동을 벌이고, 운동화 출근생활속 운동을 전개해 생활 속 운동을 강조해온 그는 자전거 라이딩족이다. 3년전 국립암센터에서 '소아암 환우 가족들을 위해 자전거 국토 종주 모금' 운동에 참여하면서 타기 시작한 자전거는 그의 또다른 생의 활력이다.
매달 200km 라이딩한다는 그는 "새파란 중년"이라며 정력을 과시한다. "유엔이 새로 정한 평생 연령 기준을 보면 66~79세가 중년"이라는 것.
욕심과 호기심은 늙지 않는다. 의사에서 화가로 변신한 그는 "이제 마지막 취미 활동을 하려고 전통 문인화와 수묵화, 산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펜화는 좋기는 하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저 같은 경우 펜화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분야를 호기심으로 배우며 몇점씩 완성해보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은 붓을 들고 전통 동양화로 돌아갈까 합니다. 하하하." 열정도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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