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잘못 인정은커녕 분열 조장" 30년 구형
"잘못 반성 등 노력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수도"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헌법 수호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3월10일.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었던 이정미(56·16기) 재판관은 탄핵심판 '피청구인' 박근혜(66) 대통령 파면(전원 일치)을 밝히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조차 막아버린 행태를 지적한 것이었다.
사실 박전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고 검찰, 특검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런 약속을 저버렸고, 이 권한대행이 여기에 일침을 던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1년 전을 돌아보면,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파문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고 진실규명에 적극 협조했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 신세를 면했을지 모른다. 또 법정에서 유기징역 최고형(징역 30년)을 구형 받고 구치소에 앉아 선고를 기다리는 처지까지는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 화를 스스로 자초하고 더 키워놨다는 지적인 것이다.
헌재가 탄핵소추 사유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직무집행시 헌법·법률 위배 여부 논의 대상은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미르·K스포츠재단,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관련) ▲공무원 임면권 남용(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문책성 인사) ▲언론의 자유 침해('정윤회 문건' 보도 세계일보 사장 해임 등) ▲생명권 보호(세월호 참사)였고, 위배가 인정될 경우 파면까지 할 정도로 그 정도가 중대한지 결정을 내리는 게 최종 과제였다.
헌재는 여기서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소추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또는 개입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피청구인의 대응 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수사 비협조 등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진 후의 박 전 대통령 모습은 탄핵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헌재 재판관들의 심증에 영향을 미쳤다는 측면보다는 그런 행태가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를 헌재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사건이 터진 후에도) 대통령으로서 국법을 부정하는 모습을 띄게 됐고 그 자체도 하나의 중대사건이 돼 버렸다"며 "만일 박 전 대통령이 검찰, 특검에 적극 협조하는 등 달라지기 위해 노력했다면 국민 분노도 덜 했을 것이고 헌재가 탄핵결정까지 안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독선적 행보는 재판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지난해 10월16일 구속기간 연장에 반발해 법정에서 '재판부 불신'을 선언했고 이후 공판에 일절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달 2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피고인도 없이 검찰 구형이 이뤄지고, 피고인 최후진술도 없는 웃지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검찰도 헌재와 사실상 동일한 지적을 했다.
검찰은 "현 시점에서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이제라도 잘못을 통감하고 자신의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법 불신을 조장하고 여전히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징역 30년, 벌금 1185억원을 선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법조인은 "국정농단 사건이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이었다면 그 이후 모습은 '실패'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국민은 잘못을 안 하는 리더도 좋지만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하고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리더의 모습을 더 바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에서도, 재판 과정에서도 그것에 큰 실패를 했다"며 "그동안의 국정농단 국면이 주는 가장 중요한 반면교사가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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