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전..갤러리현대 4월8일까지
뒤틀린 타이어·문양 새긴 삽등 30점
【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산업디자이너 측면에서 보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물건을 비틀고, 굳이 힘들게 문양까지 새겨야 했는지가 더 고민일 것 같은 작품이 전시장에 등장했다.
벨기에 신개념미술 (Neo-Conceptualism) 대표작가 빔 델보예(53)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 개막했다. 2017년 스위스 바젤 팅켈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 이후 개최되는 올해 첫 전시다.
빔 델보예는 데미언 허스트와 꼽히는 세계미술시장 악동 미술가다. 돼지 몸에 문신한 후 키워 자연사하면 캔버스에 박제해 전시판매하는 기괴한 아티스트로, 그의 기행은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한 마르셀 뒤샹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다.
인간의 소화기관을 재현한 '똥 만드는 기계'를 제작 충격을 선사했다. 기계에서 생산된 똥을 진공 포장해 사인하고 판매(천달러)했다. '똥도 예술이 될수 있다' 것과 '모든 것은 똥이 된다'는 그의 철학은 희귀품에 허세작렬하는 미술시장에 똥침을 날리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 핫한 예술가로 등극했다.
'똥 작품' 이후 그는 첨단기술과 합세해 별것 아닌 것을 극강의 예술품으로 만들어낸다. 지난 2012년 파리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안에 높이 11m ‘쉬포(Suppo)’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뽀족한 탑 같은 조각은 알고보니 '나선형의 좌약'이었다. 섬세한 고딕양식으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위대한 예술품으로 변신한 일반 사물의 아름다운 반란이었다.
충격과 파격사이에서 미술시장을 희롱하는 빔 델보예는 '비틈의 미학'이 특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비틀고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들은 기발하고 변덕스럽고, 어딘가 초현실적이어서 더욱 가치를 올리고 있다.
고딕양식과 페르시안 문양으로 무장한 그는 벨기에 베르빅 출신으로 현재 벨기에 겐트와 영국 브라이튼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자동차, 여행 가방, 삽, 살라미와 햄으로 만든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총 30여 점이 선보였다.
뫼비우스 띠 같은 타이어(Tyre) 연작의 경우 바퀴에 불과했던 타이어가 마치 숭배물처럼 재탄생 된 듯하다. 자동차 또는 트럭 타이어에 꽃, 소용돌의 무늬(scroll), 잎사귀 등 아르누보의 섬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오뜨꾸뛰르(haute couture)같다.
'Tapisdermy'도 마찬가지. '박제’라는 의미의 'taxidermy' 와 ‘직물’이라는 뜻을 지닌 'tapestry'에서 나온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이자 연작이다. 돼지 모양의 작품도 페르시안 카페트를 입혀 동물의 가치를 올리는 동시에 현 시대 미술 시장의 허상적인 면을 공략한다. 실제 토끼를 박제하여 슬리퍼에 응용을 한 '토끼 슬리퍼'도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오간다.
하찮은 것들을 섬세하고 자극적으로 변신시키며 그가 노리는 건 ‘불변’이라는 개념이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모든 것은 변하고 무용하다는(아무것도 아니다는) 의미를 새긴다.
기존 사물이 오로지 기능 위주라면 빔 델보예의 손에 들어온 사물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럭셔리해진다. 귀족의 문양들과 기호들을 더해 사물의 사회적인 위치를 바꾸고 높인다. 삽질하는 삽인데 더이상 삽이 아닌 것 처럼 보이게하는 능력이다.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사물과 이미지를 고급 문화로 정당화했다면, 빔 델보예는 서민적인 사물에 고급 문화의 장식물을 덧붙여 그것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승격시킨다.
이 때문에 빔 델보예의 작품들은 대량생산되는 물신화의 메커니즘을 휘젓는다는 평이다.
고정관념과 지배적 문화 코드에 대항하며 예술세계를 발칵 뒤집어 유명세를 탄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Gothic Works', 고딕 양식에 집중하고 있다. 금속 구조물을 레이저로 잘라 만든 작품은 건축 구조적 차원을 넘어서며 SF영화속같은 신비함까지 뿜어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고딕 작품' 은 '클로아카(Cloaca· 음식을 똥으로 바꾸는 기계)'와 함께 빔 델보예의 대표 연작이다.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콘크리트 믹서(레미콘)등에 성당, 타워, 게이트(gate)같은 건축모양을 레이저-컷 기술로 잘라 고딕 스타일의 섬세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장식의 과잉과 기계적인 형태가 독특한 작품은 신성시하게 여기는 전통의 가치와 예술을 비판하며 모든 것은 대체될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사물이 제 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빔 델보예의 예술적 도발과 수공예적 아름다움이 빛난다. 기존의 쓰임과 용도를 탈출한 작품들은 미학적 충격을 선사한다. 재치있고 풍자적이면서 정교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속삭이는 건 결국 '일상이 예술'이라고. 그러니 고정관념과 경계를 해체하고 관습에 맞서라고 자극한다. 전시는 4월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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