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을 바꿔라①][르포-1]빈곤의 늪…열악한 난방에 악취에도 문 못열어

기사등록 2018/01/16 11:29:40 최종수정 2018/01/30 09:20:29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속담처럼 전해지는 이 말은 가난이 국가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가난은 소득의 양극화와 빈곤화, 고용 불안정성과 실업의 증가에 따른 결과물로 파악된다.

 대한민국에서 쪽방촌은 가난의 집약물과도 같다. 쪽방촌은 최소한의 주거복지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우리사회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거처다.

 뉴시스는 신년기획 '쪽방촌을 바꿔라'를 통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1월 한달간 기자들을 직접 상주시켜 거주민들의 현실을 밀착취재한다. 동시에 헌법상에 보장된 최소한의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거리. 2018.01.15. limj@newsis.com

 
 서울역 11번 출구 왕복 4차선 후암로 두고 빈부 경계
 서울역·남대문시장 유동인구 늘며 여인숙·여관·집장촌 동자동쪽방촌 형성
 주택 1채당 쪽방 평균 12.5개, 10.3명 거주…2016년 기준 월세 22만4723원
 10명중 6명 '실직·사업실패로 쪽방주민돼…응답자 77% '연락할 사람 전무'
 습기 안빠져 빨래 곤욕…쥐 잡으려 연기피우기도 이웃 항의로 녹록지 않아
 낡은 목재구조물 화재에 취약…진입로 좁고 소방차 접근 어려워 진압 난망


【서울=뉴시스】특별취재팀 =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11번 출구옆 왕복 4차선 도로 후암로는 빈부 차이를 보여주는 경계다. 30층 넘는 고층 건물들이 가지런히 자리 잡은 왼쪽과 달리, 오른쪽으로는 낡고 낮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제2의 강남'으로 주목받던 이곳엔 2013년 사업이 좌초하자 '부동산 대박'을 꿈꾸던 사람들의 탄식이 가득했다. 반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들도 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다.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작은 주거공간 '쪽방'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서 동자동이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후암로 오른쪽 쪽방촌을 '동자동 쪽방촌' 또는 '서울역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이 가까이 있어 늘어난 유동인구를 상대하던 여인숙과 여관, 집장촌이 쪽방이 됐다.

 쪽방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주거 형태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에도 못 미친다. 전국쪽방상담소협의회는 '최저주거기준 미만 주택 이외의 거처로서 보증금 없이 일세·월세를 지불하는 부대시설(세면·취사·화장실 등) 없는 주거공간' 정도로 설명한다. 싼값에 잠만 잘 수 있는 방이란 얘기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2016 서울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주민의견 조사'를 보면 서울 쪽방밀집지역 주택은 2층 건물이 39.2%로 가장 많았고 지상 1층 22.2%, 지상 3층 21.0% 순이다. 주택 1채당 평균 12.5개 쪽방에 10.3명이 살고 있다.

 서울지역 쪽방 평균 월세는 2016년 기준 22만4723원. 정부가 올해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매달 지원하는 주거급여 21만3000원만으로도 겨우 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내부. 0.7평 남짓한 공간의 절반 이상을 침대가 차지해 물건 수납에 어려움이 있다. 유일한 창문은 겨울철 찬바람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과 청테이프로 막아놨다. 2018.01.15. limj@newsis.com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머물렀던 쪽방은 이 조건에 부합했다. 1985년 지어진 3층짜리 벽돌구조 다가구주택 방을 2~3개로 쪼갰다. 1~3층 총면적 약 53평(176.79㎡) 남짓한 공간을 복도와 화장실 겸 세면실 등을 제외하고 1평 안팎 쪽방으로 나눈 공간에 30가구가 산다.

 후암삼거리 인근 고갯길에 있는 이곳 쪽방을 만든 이는 정연성(가명·79)씨다. 방 나누기부터 보일러 설치, 화장실 변기 및 수도꼭지 교체는 물론 전기 설비까지 모두 정씨 솜씨다. 이곳 쪽방 평균 월세가 20만원인데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가는 적자다.

 정씨는 이곳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이시냐'는 물음에 그는 "나도 집주인한테 전세랑 월세 내고 집을 얻어서 방을 만들고 세를 준다"며 "임대료 받으면 이것저것 제하고 한해벌이 정도가 나온다"고 답했다.

 그도 쪽방촌 주민이다. 1978년 서울에 올라와 동자동에서 생활을 시작해 한때 사업이 성공해 아파트에 살았던 적도 있지만 사업이 실패하면서 다시 쪽방촌 문을 두드렸다. 처음 동자동에 살 땐 아내와 두 아들이 함께였으나 사업 실패후 쪽방촌에 뿌리내릴땐 혼자였다.

 큰아들이 설을 앞두고 보냈다는 조기 한 상자를 꺼내 보이며 "떨어질 만하면 사서 보내는데 이번엔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보내줬다"며 자랑했다. 그러나 '가족들과 자주 연락하냐'는 물음엔 "다른데서 잘살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2016년 서울시 조사에서 동자동쪽방촌 주민 827명 가운데 63.2%가 유입계기(중복응답)로 '실직, 사업실패 등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이어 '어려서(젊어서)부터 살았다'는 응답자가 9.1%, '이혼 등 가족해체'라고 답한 이들이 8.1%였다.

 응답자의 77.0%는 '연락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가족과 연락이 닿는 정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1년 이내에 가족이나 친지가 방문한 적 있느냐는 질문엔 47.3%가 '아무도 방문한 적 없다'고 했으며 39.1%는 '방문할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고 했다.

 ◇쪽방에서 일주일…환기·빨래 건조는 '불가능'

 기자가 머문 방은 정씨가 만든 쪽방 중 가장 싼 월세 17만원짜리였다. 크기도 가장 작았다. 2층 공용화장실 바로 옆 방으로 가로 1.3m, 세로 1.9m, 약 0.7평(2.47㎡)으로 1평이 채 안 됐다. 방 면적 절반을 차지하는 침대엔 키 172㎝인 기자가 겨우 발 뻗고 누울 수 있었다.

 쪽방에서 첫날 냄새와 사투를 벌였다. 방문을 열자마자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담배와 이른바 '홀아비 냄새' 등이 뒤섞였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물티슈로 방 이곳저곳을 닦아봐도 소용없었다.

 가로 58㎝, 세로 70㎝ 크기 창은 스티로폼이 덮인 채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환기를 위해 테이프를 살짝 떼자 바람이 손등을 할퀴었다. 집만큼이나 오래된 창은 밖을 내다보는 것 외에 창으로서 기능은 다 했다.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문제였지만 찬바람은 생존의 문제였다. 바닥에 깔린 전기장판과 침대 위 전기매트가 난방시설 전부인 쪽방에서 사람들은 환기보다 추위를 막는 걸 선택한 모양이다.

 정씨가 만든 쪽방내 벽면은 사방이 클로버 무늬가 들어간 스티로폼 소재 단열 벽지로 채워졌다. 기존 건물 벽만으론 단열이 안되는 탓이다. 쪽방에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 단열재를 썼을 리 없다. 형광등 없는 복도는 어두워 스마트폰을 비추지 않고선 한발짝도 내딛기 어려웠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에서 건조가 쉬워 구매한 스포츠타올을 오전 7시께 사용하고 옷걸이에 걸어놨으나 한나절이 지난 오후 7시가 넘도록 일부분이 마르지 않았다. 세탁을 마친 의류도 건조가 어려웠다. 2018.01.15. limj@newsis.com


 빨래는 했는데 건조가 문제였다. 방과 붙어 있는 화장실 겸 세면실에서 물을 쓸 때마다 벽면을 따라 물줄기가 흘렀다. 쪽방 생활 3일째인 4일 앞서 이틀간 입고 신었던 긴 팔 티셔츠 2장, 발열내의 2장, 속옷 2장, 양말 2켤레 등을 공용세탁기로 빨았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젖은 상태 그대로였다.

 앞방에 사는 20대 남성도 빨래가 최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내 방은 물이 흐르지 않아서 빨래가 금방 마르긴 한다"면서도 "빨래는 마르는데 그때마다 습기가 차고 천장에 곰팡이가 피어 좀체 사라지질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빨래를 한 날이면 빨래에서 나온 습기로 베개와 이불이 젖었다.

 이웃집은 쥐가 골칫거리였다. 연기를 피워 쥐를 내쫓으려 하면 연기 때문에 다른 이웃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바퀴벌레나 쥐를 잡으려 덫을 설치해도 효과는 잠깐이었다.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주택은 안전성과 쾌적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강도 및 내열·내화·방열·방습 재질 구조부 ▲방음·환기·채광·난방설비 ▲소음·진동·악취·대기오염 법정기준 충족 ▲자연재해 안전 지역 ▲안전한 전기시설 및 화재 발생 피난·구조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 법과 현실 사이 거리는 아득했다.

 ◇화재불안 안고 사는 쪽방촌 주민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침대에 설치된 전기매트. 고온으로 오랜 시간 작동할 경우 열선이 과열로 녹아 매트리스에 붙거나 불이 날 위험이 있어 온도 조절기를 청테이프로 막아놨다. 2018.01.15. limj@newsis.com

 "춥다고 방 안에서 '부루스타'(휴대용 가스버너)로 밥해 먹으면 안돼. 1층에 가스레인지랑 싱크대 있으니까 거기서 요리해야 해요. 전기장판이랑 전기매트 온도도 너무 높게 올리면 안 돼.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쪽방 잔금을 치르던 날 정씨가 유일하게 제시한 계약조건이다.

 5일 오후 동자동 쪽방촌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불이 났다. 2층짜리 건물 화재로 60대 남성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은 방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발생했다.

 정씨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입김이 나오는 이불 밖 한기를 피하고자 정씨 몰래 올려놨던 전기매트 온도를 낮췄다. 전기매트는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 등에 불이 옮겨붙기 쉽기 때문이다. 밤새 틀었던 전기장판도 잠들기 전 전원을 꼭 껐다. 목표는 쪽방에서 일주일 '생활하기'에서 '생존하기'로 바뀌었다.

 쪽방촌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건물들이 오래된 데다 목재 구조물도 보인다. 2015년부터 6층 이상 고시원 등 도시형 생활주택을 신축할 땐 스프링클러 등을 의무 설치해야 하지만 쪽방촌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공공이 사유재산인 쪽방 건물에 설치하기도 어렵다.

 불이나면 신속한 대피도 힘들다. 2016년 서울 지역 쪽방촌 주민 2473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225명(49.5%)이 60대 이상 노인이다. 응답자의 22.8%는 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장애가 아니더라도 71.8%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 질병(중복응답)으로는 고혈압이 34.2%로 가장 많았고 관절염 24.7%, 당뇨 20.7%, 우울증 8.3%, 신경통·디스크 7.1%, 심장질환 6.5%, 만성호흡기질환 5.8%, 뇌혈관질환 5.2% 등이 뒤따랐다.

 게다가 동자동 쪽방촌은 경사가 가팔랐다. 통행로마다 계단들도 눈에 들어왔다. 쪽방촌 일대 주요 계단 4곳의 한칸당 높이를 쟀더니 평균 25.5㎝로 주택건설기준 공동 사용 계단 적정 높이인 18㎝를 웃돌았다.

 실제 동자동 쪽방촌에선 3층짜리 건물에 불이 나기도 했다. 1층에서 난 불이 3층까지 전부 태웠다. 돈의동 화재 이후 8일 순찰에 나선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소방차 수십대가 출동했는데 진입로가 좁은데다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웠다"며 "결국 소방차 대신 주변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와 불을 끄느라 애를 먹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만약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만약은 없어요. 쪽방에선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옆집으로 옮겨붙으니까. 쪽방 건물 중엔 2층에 LPG 가스통을 얹어놓은 집도 있어서 얼마나 불안한지 몰라요. 그저 불이 안 나게 해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어요."

 lim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