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PC 사법행정 문서 열람·조사
"문서 존재 여부 아직 말 못해" 함구
법원 내부망에 강제 개봉 찬반 맞서
전·현직 대법원장 고발…검찰 배당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 =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는 추가조사위원회가 특정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한 문건이 있는 것으로 의심 받는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 중인 가운데 그 결과에 법조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4일 대법원에 따르면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저장된 사법행정 관련 문서를 열람하고 선별·분류하는 작업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개봉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힌 지 열흘 가까이 됐다.
조사는 사법행정 관련 문서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문서와 비밀침해 가능성이 큰 이메일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 저장매체의 모든 문서를 열어 조사하는 것이 아닌 문서가 생성·저장된 시기를 한정해 열람했다. 현안인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의 키워드로 문서를 검색한 후 해당 문서를 열람하는 방식이다.
추가조사위는 이와 함께 관련 당사자들의 참여와 의견 진술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컴퓨터를 사용한 당사자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끝내 동의를 얻지 못하고 개봉하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우려해 선을 그은 것이다.
추가조사위는 "조사대상과 방법을 한정하고 당사자에게 참여와 의견진술 기회가 부여된다며 사적 정보(비밀)가 침해될 개연성이 거의 없다"며 "문서 열람 등에 당사자들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컴퓨터 개봉 이전부터 조사를 진행하는 현재까지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법원 내부망에는 당사자 동의 없이 컴퓨터를 개봉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는 의견과 공적 업무에 사용된 컴퓨터로 당사자 동의 없이 조사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양쪽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태규(51·사법연수원 28기)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컴퓨터 강제 개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칙에 엄격하고 신중해야 할 법원이 영장주의라는 형사법 대원칙에 위반된다는 의심과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서경환(52·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이숙연(50·26기) 부산고법 판사도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 조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올렸다.
반면 류영재(35·40기) 춘천지법 판사와 차성안(41·35기)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 등은 공용컴퓨터로서 당사자 동의 없이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는 반박 의견을 올린 바 있다.
전·현직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되는 전례 없는 상황도 빚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일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 소속 판사 등을 비밀침해죄 및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했다. 당사자 동의를 얻지 않고 법원 영장 없이 컴퓨터를 강제 개봉한 것은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 등 전·현직 고위 법관 8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돼 있는 상태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법관 독립성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통상 고발인 조사부터 진행할 것으로 보이나 법원 내부의 일인 만큼 선뜻 수사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법원 내부에서 진행 중인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 등을 지켜보며 추후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조사위는 현재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 관심이 높은 만큼 구설에 오를 가능성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추가조사위 측은 당사자 참여 및 조사 등과 관련한 질문에도 "조사중이라서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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