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단색화' 창시자인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다시 '후기 단색화'전을 기획해 눈길을 끈다.
'한국의 후기단색화'전을 타이틀로오는 5일부터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펼친다. 윤진섭 평론가와 리안갤러리가 1970년대부터 단색조 작업을 꾸준히 해온 11명의 작가들을 뽑았다. 대부분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들로, 이번 전시에는 김근태, 김이수,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법관, 이배, 이진우, 장승택, 전영희, 천광엽의 '단색화 같지만 다른(개념의)단색화'를 보여준다.
이후 '단색화'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에서 존재감을 가졌지만 유명세는 덜 했다. 2년후 국제갤러리가 단색화작가들을 마케팅하면서 'K팝' 같은 한류 열풍을 몰고왔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서 '단색화 특별전'을 비롯해 소더비 크리스티등 세계적인 경매사에서 수십억대에 낙찰되며 '한국 그림' 돌풍을 일으켰다.
'단색화'는 말 그대로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인데, 서양의 모노크롬 미니멀 아트나 색면추상과 다른 평가다. 50~60년대 서양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모노크롬이 쇠퇴한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50~60년만에 세계미술시장에 급부상했다. 1950~60년대 서양 모노크롬에 매료됐던 젊은 화가들이 나이 70~80세가 되어서야 빛을 본 단색화는 '힐링의 시대' 타이밍이 맞았다. 바르고 뜯고 덧칠하며 오랜세월 수행하듯 반복의 미학이 빚어낸 작품은 곰삭은 깊이로 '명상적인 작품'으로 부상했다.
반면 '단색화'는 색 그대로 극단적이었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인기를 얻자 한국미술시장을 점령하면서 쏠림 현상을 심화시켰다. 오로지 '단색화'뿐인 것처럼 팝아트와 다색화를 무산시킨 단색화는 시장 논리에 편승했다. 상업적인 붐으로 '단색화=돈'이 됐고, 미술관 갤러리 경매사마다 쏟아진 단색화, 단색화에 진부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2014년부터 약 3년간 국내외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단색화는 2017년부터 둔화된 조짐이다. 유명화랑, 미술관에서 1세대 단색화가들이 초청을 받거나, 옥션의 동향이나 전시와 관련된 소식을 뉴스로 다루었던 것에 비하면 주춤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국내외의 컬렉터, 기관, 미술품투자자들이 선호하는 70~80년대의 작품들이 물량적 측면에서 이젠 어느정도 고갈 될 단계에 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팔릴만큼 팔렸다는 의미다. 반면 상업적 붐에 걸맞는 담론의 부재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담론의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단색화의 붐업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에서보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보다 건강한 한국 단색화의 형성을 위해서는 전기 단색화에 이어 후기 단색화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의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단색화가 시장적인 측면에서만 이슈가 되고, 미술사적으로는 사장되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후기 단색화'는 어떻게 분류되는 것일까.
윤진섭 평론가는 "후기 단색화작가들이란 70~80년대에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직접 체험했던 작가군(群)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50~60대의 연령에 도달한 세대가 여기에 속한다"면서 "전기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벌에 해당하는 이들은 한국의 근현대화(1960 이후)의 과정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수행하듯 그림만 그렸던 단색화가들과는 결이 다르다. 후기 단색화가들은 유교적 생활윤리보다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몸에 배어 있다. 일본어 보다는 영어의 구사가 더욱 자연스럽다. 유럽과 미국등 서구 사회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세대가 많은 것도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특징이다.
단색화로 보이지만 작품에도 차이가 있다. 1세대 단색화 작가들처럼 예술을 수양이나 수신의 과정 혹은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후기 단색화가들은 예술을 의식의 표현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한국이 산업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한 70~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이들은 독자적인 재료와 매체 실험을 통해 단색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봐야 할 이유가있다.
지난 3~4년간 한국 미술 열풍을 일으킨 단색화를 잇는 이번 전시는 '후기 단색화'라는 전시명이 '단색화' 개념으로만 한정 지어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시들해진 단색화의 무관심보다 상업갤러리의 이같은 노력은 건강한 한국 현대미술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미술애호가와 컬렉터는 물론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다양하고 깊이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진화를 살펴볼수 있는 기회다.
윤진섭 평론가는 "이 전시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본격적으로 후기 단색화를 조명한 전시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향후 후기 단색화의 흐름과 향방을 가늠해 볼수 있을 것"라고 자신했다. 전시는 2월24일까지.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