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불안해 한탕주의 만연…비트코인 광풍 유발
"도박·사행심리 부추겨…복권·인형뽑기보다 더 중독적"
"한국서 유독 쏠림 심한 건 집단주의 문화 때문" 분석도
【서울=뉴시스】 사건팀 =#. 대학생 홍모(27)씨는 학업과 취업 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올해 3월부터 비트코인에 소액을 투자해오고 있다. 원래 블록체인(모든 비트코인 거래 내역이 기록된 공개 장부)에 관심이 있었던 홍씨는 투자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시세가 오르면서 소소한 재미를 많이 느낀다.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데 총 109만원을 썼는데 최근 보유 가치가 275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앞으로도 가상화폐 원천기술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투자 의향은 여전하다.
#. 서울 강동구에 사는 현모(42)씨는 친구 따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처음 친구가 시작할 땐 한 개당 200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이 400만원으로 두 배로 뛰자 투자를 결심했다. 1BTC당 450만원일 때 매입해 1800만원까지 올랐다. 주식은 종목에 따라 등락폭이 다르고 쉽게 오르지도 않는 반면 비트코인은 잠재적으로 가치가 더 크고 거래방식도 복잡하지 않아 쉽게 빠져들었다.
비트코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유력 외신들이 한국 내 비트코인 투기 과열을 우려할 정도다. 열풍을 넘어 '광풍(狂風)'이 확산되면서 사행성을 조장하는 도박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국내에 불고 있는 비트코인 광풍은 투기 세력이 몰려들어 과열된 측면이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미래 잠재적인 가치를 기대하고 관심을 둔 사람들도 있지만 가상화폐의 전형적인 특성인 고위험을 감수하고 일확천금을 노린 도박꾼들이 투기적 자금을 봇물처럼 쏟아내면서 사회적 화폐 기능 없이 도박판만 키웠다는 것이다.
특히 비트코인은 일반 증권시장과는 달리 폐장이 없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24시간 매매가 가능한 점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 투자 문외한들이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비트코인 전업투자자로 나선 사례도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종일 비트코인 시세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트코인 좀비'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비트코인 광풍의 본질적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안 및 그로 인한 한탕주의 풍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일상화할 정도로 소시민들의 정치·경제·사회적 불안감이 크고 제도적 안전망은 부족한 상황에서 저마다 각자도생의 자구책을 찾다 보니 국가의 제약이 없고 단기간에 이득을 노릴 수 있는 신개념 비트코인에 쏠린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설문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다'라는 말에 성인 응답자 3710명 중 62.7%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14.2%에 그쳤다. 또 '살면서 이민을 꿈꿔본 적 있습니까'란 질문에 54.3%가 '있다(꿈꿔봤다)'고 답했다. 사회가 불안하면 한탕주의 심리도 저변에 깊숙이 깔리게 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 괜찮지만 노력해도 상황이 좋아질지 나빠질지 불안한 상황이라면 '한탕'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비트코인 열풍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화폐 붐과 맞물려 불확실함을 쫓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적 불안감을 해소 또는 회피하기 위해 성공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품게 되는 것도 이상과열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가 불안하다보니 사람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도박심리와 비슷하다"며 "개인적으로 (비트코인 광풍에는) 도박 심리, 사행심리, 불안심리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비트코인은 도박과 가깝지만 복권과는 다르다"면서 "비트코인은 훨씬 더 크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깔려 있고 복권이나 인형뽑기보다 더 중독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젊은층의 비트코인 중독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취업난 등으로 불안감이 큰 청년일 수록 성공을 가시화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비트코인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임 교수는 "청년층이 비트코인에 중독되는 건 성공의 가치를 돈에 두고 한탕으로 크게 벌어야 한다고 쫓기는 심리 때문"이라며 "돈보다는 다른 쪽으로 불안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행복을 강도보다는 빈도에서, 작은 행복에서 찾는게 낫다"고 조언했다.
비트코인에 우르르 몰리는 현상을 민족성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국내 거래소 빗썸이 암호화폐 거래량 세계 1위일 정도로 한국에서의 열기는 국제 사회에서도 유별나다. 전형적인 '쏠림 문화'의 한 단면으로 볼 여지가 있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가 집단주의 문화이다보니 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며 "남들 하는 걸 잘 따라해 유행도 빠른 편이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다 보니 체면문화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에 대한 동조심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pj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