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폭행·모욕·업무방해 외에 강요죄까지 법리 검토
술자리서 김앤장 변호사들끼리 "○○○변호사님" 호칭
"나는 주주님이라 불러달라"…막말 아닌 호칭 요청한 것
"김씨, 분위기에 못 끼고 변호사들에 사실상 무시당해"
"엄히 처벌해 국민들 박수 받고도 싶었으나 요건 안 돼"
【서울=뉴시스】박준호 안채원 기자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셋째 아들 김동선(28)씨의 변호사 폭행·막말 사건은 재벌 3세의 대표적 '갑질' 사례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 술자리 분위기는 김씨가 갑질이라고 할 만한 위압적 행태를 보인 것이 아니었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한화가 대형 로펌 김앤장(김&장)의 로얄 고객이어서 전형적인 '갑(甲)-을(乙)' 관계에 의한 폐단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실상은 재벌3세가 대형 로펌 변호사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6일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2계는 김씨에 대해 형사처벌이 어려운 폭행, 모욕, 업무방해죄 대신 형법상 강요죄로 처벌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를 했지만 결국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월28일 밤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김앤장 신입 변호사 10~12명이 모였고 이 자리에 김씨를 데리고 간 지인은 불과 15분만에 자리를 떴다.
김씨는 이날 동석한 변호사들과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에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했고 그들 사이의 대화에 끼지도 못한 채 혼자 술만 계속 마시다가 만취상태가 됐다.
김앤장 신입 변호사들은 입사동기일 뿐 서로 간에 그다지 친분은 없었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변호사님", "○○○변호사님" 식으로 존칭을 쓰며 예우했다.
여기서 재벌3세의 갑질 폭언으로 알려진 "날 주주님이라 불러라'라는 말이 나왔다.
올해 초 한화건설 팀장으로 재직하던 중 폭행 사건으로 해고된 김씨는 무직이라 직책은 없지만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인 만큼 변호사들끼리 서로 '~님'으로 부르듯 본인도 '주주님'으로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앤장 변호사들이 경찰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당시 술자리 분위기는 김씨를 심지어 '무시'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예를 들면 김씨가 변호사들에게 "건배"를 선창할 때 여기에 호응해 술잔을 든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김씨가 중간에 술에 취해 바닥으로 쓰러졌을 때도 그를 일으켜세우거나 걱정하는 변호사가 없었다. 이를 보다못한 술집 종업원이 "사람이 쓰러졌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대신 일으켜 세울 정도로 변호사들은 회식자리 내내 김씨의 존재를 외면하듯 했던 것이다.
김씨의 폭행 논란은 모임이 끝날 무렵 발생했다. 자리를 파하려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남성 변호사가 김씨를 보내려 일으켜세우다가 뺨을 한 대 맞았고, 뒤이어 여성 변호사가 김씨를 재차 깨우려다 머리채가 잡혔다.
두 변호사는 김씨가 인사불성일 정도로 만취 상태였기 때문에 폭행으로 인한 상해나 모욕감에 분노하기보다는 술버릇이 몹시 안 좋은 정도로 넘겼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김앤장 변호사들이 김씨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정식으로 항의하지 않은 이유도 갑질로 인한 피해를 느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김씨의 존재를 무시헸기 때문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경찰은 김씨가 한화 계열사 직원도 아닌 김앤장 변호사들에게 "주주님으로 부르라"고 한 발언에 대해 강요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법리 검토를 했으나 현장에 있었던 이들로부터 이 같은 진술을 전해듣고 강요죄도 법리적으로 구성 요건을 만들기 힘든 것으로 판단해 결국 무혐의로 결론 냈다.
형법상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김씨는 지난 1월에도 한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 2명을 폭행하고 순찰차 일부를 파손한 혐의로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0년 10월에는 호텔주점에서 역시 만취 상태로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고 집기를 부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가 피해자들과 합의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만약 김씨가 이번 사건으로 기소됐다면 집행유예 기간 중에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씨가 재벌3세이지만 본청에서 서울청이나 수사팀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지시한 건 없었다"며 "처벌 여부는 전적으로 수사팀이 조사 결과를 놓고 판단했고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수사했기 때문에 재벌 봐주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널리 알려진 재벌 3세이고 요즘 뜨거운 사회 문제인 갑질 사건이라 사실 수사팀에서는 김씨를 단호하게 처벌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변호사들은 김씨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약자로서의 입장보다 오히려 술버릇이 나쁜 김씨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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