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을 개막한 이 뮤지컬은 무엇보다 모던함으로 돌진해온다. 현재에 통하는 햄릿이라는 얘기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사실 뮤지컬로 옮겨도 크게 덜컹거리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희곡을 쓴 시인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노래하듯 대사를 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운율, 즉 듣는 것이 강조된 '청중'을 위한 연극이었다.
중요 대사에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해도 무방한 이유다. 그런데 김경육 작곡가의 넘버들은 쉽지 않다. 다채로운 화성과 반음이 점철돼 있다. 배우들이 부르기에도 관객들이 듣기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극의 흐름과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데 적확하다. 특히 햄릿과 오필리어의 '수녀원으로 가', 햄릿과 클로디어스의 '극중극 : 쥐덫', 햄릿과 거트루드의 '죽음의 서곡' 등 듀엣 넘버들이 갈등을 빚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대변하며 극의 적절한 추동력이 된다. 비장미 넘치는 피터 케이시의 편곡도 일품이다.
매끈한 미장센도 눈길을 끈다. 양복과 원피스 등 의상은 물론 담배를 태우고 칼 대신 총을 사용하는 등 소품도 현대적이다.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이 물고 물릴 때 공중에 왕관을 형상화한 듯한 띠 모양의 조형물 위로 거울처럼 비추는 대형 오브제가 상징적이다. 인물과 장면이 일그러진 채로 관객들에게 비춰지는데, 현재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해준다.
예컨대, 맹세를 하게 되면 뮤지컬 어법상 등장인물은 실행을 해야 하는데 햄릿은 구석에서 고민하고 주저한다.
이에 따라 각색까지 맡은 아드리안 오스몬드 연출과 강 협력 연출은 햄릿 행동에서 능동성을 찾으려고 했다. 김 작곡가 작곡상에서 고민한 드라마투르기가 이 부분에 도움을 주지만, 원작의 흐름은 따라가되 살짝 변화를 준 각색이 큰 역할을 했다.
본래 원작에서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햄릿의 그 유명한 대사 '사느냐 죽느냐'를 뒷부분으로 빼서 따로 넘버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이번 작품은 제목에도 등장하는 '얼라이브', 즉 살아 있는 생명력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원작대로 햄릿을 비롯해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죽지만, 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순간순간에 꿈틀대는 에너지가 그것이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걸출한 가창력으로 노래 자체를 단호한 행동 의지로 변모시키는 홍광호의 햄릿이 일종의 영웅서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에 홍광호와 함께 햄릿 역에 더블캐스팅된 '꽃미남' 고은성은 좀 더 연약하지만 그래서 더 위태로운, 다른 결의 햄릿을 보여준다.
이번 뮤지컬 '햄릿 : 얼라이브'의 또 다른 특징은 햄릿뿐 아니라 다른 주요 배역들의 비중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건 탄탄한 캐스팅이 한몫한다.
왕위에 욕심을 내 형을 죽이고 형수를 차지한 뒤 햄릿을 아들로 삼는 클로디어스 역의 양준모는 악렬함보다 페이소스를 불어넣는다. 만만치 않은 가창력과 묵직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그는 홍광호와 팽팽한 카리스마 대결을 보여준다.
여성 캐릭터들도 소비되지 않는다. 김선영의 거트루드는 지금까지 본 여느 햄릿의 같은 캐릭터 중 가장 품격 있게 해석됐다. 오필리어 역의 정재은은 애처로움과 광기를 오가는 '오필리어의 노래'만으로도 쟁쟁한 다른 뮤지컬 스타들에게 눌리지 않는 내공을 보여준다.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악행에 대한 심증을 굳히기 위해 극중극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햄릿의 또 다른 작품인 '리어왕'의 내용을 삽입하는 등 셰익스피어 자체에 대해서 톺아본 고민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12년 전 '햄릿'의 뮤지컬화에 몰두했던 창작진(김경육·성종완), 이 창작물을 적극 지원하는 프로덕션인 CJ E&M, 그리고 새로 합류한 창작진(아드리안 오스몬드·강봉훈)이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홍광호와 양준모는 이번 초연작에 앞서 '햄릿'과 인연이 있다. 홍광호는 2006년 중앙대 공연에서 '햄릿'을 맡았고, 2007년 CJ 창작리딩공연에 양준모와 참여했었다.
창작진과 배우들이 오랜 기간 작품을 새롭게 숙성시키고, 메시지를 뮤지컬 장르에 맞게 재해석한 노력이 햄릿의 고뇌처럼 느껴져 먹먹해진다. 2018년 1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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