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와 유고 연방 해체로 연방 서북단의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그 아래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도 독립에 나섰다. 그러나 보스니아에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는 연방 중추였던 세르비아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각 공화국의 독립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를 적극 저지했다.
보스니아에서 독립파인 보스니아 무슬림(보스니악) 및 기독교의 크로아티아계와 비독립파인 세르비아계 주민 간에 1992년 전쟁이 터졌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3년 넘게 시민 1만여 명이 세르비아 저격수들의 무자비한 총질에 목숨을 잃었다.당시 미국 클린턴 정부와 서구도 막지 못하고 이 도살극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전쟁 막바지인 1995년 7월 초 보스니아 세르비아 민병대가 동부 도시 스레브레니카 인근 지역을 포위했다. 이 지역은 2년 전 유엔에 의해 '안전 지대'로 지정돼 경무장한 네덜란드군 소속 유엔평화군 600명이 파견된 상황이었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남쪽에서 이 지역을 돌파해 올라왔으며 이에 보스니악 무슬림 주민들과 무슬림 민병대원들이 북쪽의 스레브레니카로 피신했다. 7월10일 4000명이 북으로 도망갔고, 남에서 세르비아계 군인들은 진격을 계속했다. 무슬림 북행 피난민들은 포토카리 소재의 네덜란드군 기지로 몰려왔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최고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밑에서 세르비아군(민병대) 합참의장으로 군을 총지휘하고 있던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은 네덜란드 기지에 진입해 유엔군 사령관인 톰 카레만스 대령을 불러 기지 안팎의 무슬림인들은 무장 해제해야 목숨을 보전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7월12일 1만5000명의 보스니악 남성들이 유엔군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기지를 탈출했다. 산악지대로 탈출하는 이들에게 세르비아 민병대는 포격을 퍼부었으며 일부는 항복한 뒤 살해됐다.
이들은 수백 명 씩 트럭과 창고 속에 갇혀 있었다. 7월13일 인근 크라비카 마을 창고에서 비무장 보스니악 남자들에 대한 집단 살해가 실행됐다.
힘에 밀린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은 기지에 보호를 기대하며 숨어 있던 무슬림 남성 5000명을 세르비아계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 대가로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 기지 노바 카사바에 인질로 잡고 있던 네덜란드 병사 14명을 석방했다.
14일부터 나흘 동안 8000명에 이르는 보스니악 어른 남자 및 남자 아이들이 스레브레니카 여러 곳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의해 집단 살해된다.
k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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