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던 '카세트 테이프'의 반격···매장 내자 사람 몰려

기사등록 2017/09/05 14:52:29
【서울=뉴시스】 오는 23일 오픈 예정인 카세트 테이프 매장 '도프 레코드'. 2017.09.05. (사진 = 김윤중 대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대중음악계에 '아날로그의 반격'이 바이닐(LP)에 이어 카세트 테이프로 옮겨가고 있다.

빌보드가 미국 음반 판매량 집계회사 닐슨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에서 카세트 테이프 판매량은 전년 대비 74%가 늘어난 12만9000장이었다.

작년 미국 전체 앨범 판매량인 2억80만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지 않지만,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대적 유물 또는 집안 창고 한 켠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카세트 테이프 입장에서도 놀라운 변화다. 최근 바이닐 판매량이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데 대중음악 업계는 이제 카세트 테이프 차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열풍은 이어지고 있다. 오는 23일 카세트 테이프 전문 매장인 '도프 레코드'가 정식 오픈한다. 서울에서 유일한 카세트 테이프 전문 매장이 된다.
 
김윤중(42) 도프 레코드 대표가 2011년부터 국내외에서 모은 중고와 새 카세트 테이프 1만5000여점이 사무실로 쓰는 공간 포함 25평(약 82㎡)안에서 판매된다. 창고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무려 5만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도프 레코드에서 만난 김 대표는 "보관해놓았던 카세트 테이프를 우연히 들었는데 만족도가 상당했다"고 웃었다. 매장 계산대 옆 카세트덱(cassette deck)에서는 끊임없이 카세트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 행복하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추억까지 겹쳐지더라"라면서 "음악을 정말 좋아해 업으로 삼았는데 정작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잊었는데 다시 그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공식 개장에 앞서 지난달 5일~7일 연 프리뷰 행사는 김 대표 말고도 카세트 테이프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지닌 사람임 여전히 많다는 걸 증명한 자리였다. 3일 동안 300명이 몰렸고 오픈 시간 내내 매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김 대표는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에 대한 손맛에 목마르던 리스너들의 갈증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오는 23일 오픈 예정인 카세트 테이프 매장 '도프 레코드'. 2017.09.05. (사진 = 김윤중 대표 제공) photo@newsis.com

고등학교 때부터 주구장창 메탈 음악을 들어온 김 대표는 2001년 인디 레이블 도프 뮤직을 차리고 음악업계에 뛰어들었다. 주로 해외 음반을 라이선스 해서 발매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보컬 유현상이 이끈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매니지먼트를 맡기도 했다.
 

김 대표의 성향을 감안하면, 도프 레코드 매장에 헤미베탈 카세트 테이프가 가득할 듯하지만 이 장르의 비중은 20% 가량이다. 김 대표는 "카세트 테이프로 발매된 종이 원래 많지 않아요. 가요가 50%, 팝이 30% 정도가 됩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가 카세트 테이프를 모으는 과정은 누구나 생각하듯 쉽지 않았다. 원 주인의 레코드가게가 지하에 있는 경우에는 습기가 많아 곰팡이가 피어 플레이가 되지 않거나 중간에 쉽게 끊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원체 남아 있는 물품이 없어 카세트 테이프 매장이 폐업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특종을 좇는 기자처럼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제주도에 있는 카세트 테이프 매장이 2일 후에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일 오후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다음 날 아침 매장에 가서 잔뜩 테이프를 사서 택배로 부친 날도 있었다. 어느 지방에서 매장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내려갔는데, 한발 늦어 폐기용품 처리매장에서 이미 납작해진 테이프 덩어리를 하릴 없이 지켜본 적도 있었다.

김 대표는 "단순히 음악 저장 매체가 아닌 문화적 유산과 다름 없는데 그렇게 홀대 받았다는 것에 대해 허탈했다"고 돌아봤다.

정식 오픈 전이지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판매는 이미 시작됐다. 도프 레코드에서 판매하는 카세트 테이프의 가격은 보통 6000원~7000원 가량. 중고는 1000원에 판다.

국내 음반 중 희귀본은 스물 여덟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장덕, 소찬휘가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전 기타리스트로 활약한 여성 헤비메탈 밴드 이브(Eve)의 앨범, 한국 헤비메탈 밴드 '에덴'이 1993년 발매한 '아담스 드림(Adam's Dream)' 등이 희귀 앨범이다. 이지연, 하수빈 등 1980년대 하이틴 스타들의 카세트 테이프는 단골 인기 레퍼토리다.

현재 최고 비싼 가격의 카세트 테이프는 1980년대 한국형 히어로 영화 '우뢰매'의 미개봉 편 OST로 약 15만원 선이다. 이 시리즈의 개봉한 영화의 OST 카세트 테이프 가격은 무려 20만원인데, 이미 팔려나갔다. 20만원 이상을 주고서라도 이 카세트 테이프를 구매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선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서울=뉴시스】 오는 23일 오픈 예정인 카세트 테이프 매장 '도프 레코드'. 2017.09.05. (사진 = 김윤중 대표 제공) photo@newsis.com

스테디 셀러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과 2편 OST다. 영화 속 주인공 퀼이 엄마의 유품인 '끝내주는 노래 모읍집' 테이프와 이를 재생시킬 수 있는 소니의 워크맨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장면에서 공감한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카세트 테이프 구매를 위해 해외 원정에 나서는 이들도 꽤 된다. 김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깝게는 일본 도쿄의 왈츠, 멀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잭나이프 레코즈 & 테이프스다.

그렇다고 마나아들만 가게를 찾는 건 아니다. 김 대표는 "카세트 테이프를 모르는 10대 중에서도 음악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와 입문용으로 듣기 좋은 카세트 테이프를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카세트 테이프에 대한 관심은 주변 기기로 번지고 있다. 역시 유물 취급 받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에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기 위한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도프 레코드에서도 역시 워크맨을 구비하고 있다.

일본의 음향기기 회사 아이와의 음악 재생기기 중 최고 명기(名器)로 통하는 모델인 '아이와 PX 1000'은 인터넷에 150만원 가량으로 거래되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 재생 기기의 진화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오디오 기기 제작 그룹인 브레인몽크는 초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엘보(Elbow)'를 내놓았다. 카세트 테이프 구멍에 끼우는 막대 형태의 기기로 테이프에 저장된 음악을 디지털로 변환해 들려준다.

이와 함께 옛날 음악 잡지도 새삼 주목 받고 있다. 핫뮤직, 지구촌 영상음악(GMV) 등 1990년대 인기를 끈 음악잡지 과월호 역시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인터넷 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회원수가 최근 1500명을 넘어섰다. 워크맨과 덱의 구입·수리 관련 정보가 활발히 공유된다.

카세트테이프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퀼이 테이프를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이어서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노래들에는 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영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2' 속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2017.09.05. (사진 = 마블 스튜디오 제공) photo@newsis.com
카세트 테이프는 형태가 없는 음악이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신비한 경험이다. 요즘처럼 음원을 내려받고, 용량이 모자라면 지우는 '음악 소비자'들은 맛볼 수 없는 '음악 소장자'의 느낌을 선사한다. 

독일 음반 레이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 대표는 "카세트 테이프를 포장지에서 뜯어낼 때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오는 잡음, 나는 그것이 음악이라는 범위 안에 다 포함된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색스는 음악을 진정으로 소유했다는 심리도, LP와 카세트 테이프 등 아날로그 저장 매체의 부흥에 한몫한다고 봤다.

"레코드판은 크고 무겁다. 게다가 만들고 구매하고 재생하려면 돈과 노력이 들어가고 취향도 필요하다. 사라들은 레코드판을 보면 손으로 넘겨가며 살펴보고 싶어한다. 소비자는 돈을 주고 레코드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진정으로 소유했다는 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자부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대표 역시 "도프 레코드를 음악을 직접 만지고 접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일단 매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고요, 다음은 최대한 모을 수 있는 테이프를 모아서 데이터 베이스화화는 것이에요. 이것들 모두 소중한 우리 문화 자산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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