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1세대'···40여년간 현실정치 풍자
가나아트센터서 23일부터 개인전 '바람 일다'
'촛불 집회' 흙으로 담아낸 '광장에, 서' 대작 눈길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의외다. 30호 캔버스 108개를 연결한 대형 그림 '광장에, 서'는 거침보다 부드러움으로 스며든다.
작년 광화문 광장에서 '이게 나라냐'며 격렬하게 응집된 '촛불 시위'를 담아낸 작품인데, 그동안 (봉기 도발하는) '임옥상 스타일'과는 다른 분위기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를 흙으로 그려내고, '데미언 허스트 땡땡이'같은 원형 패턴으로 촛불파도를 묘사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며 아스라함으로 파고들며 여운을 전한다.
'민중미술가 1세대' 딱지가 붙은 '원조 블랙리스트' 임옥상(67)화백이 변한 것일까.
22일 개인전을 앞두고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임 화백은 "난 투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중미술 작가'로만 묶지 말고, 그냥 임옥상으로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가 걸어온 길은 철저하게 '리얼리즘 미술가'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시각언어'로 정권에 대항했다.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였고, 미술의 사회 참여를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해왔다. “미술은 전통에 기반을 두되 역사 의식과 현실 인식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그림에서 보여줬다.
환갑이 지나고 고희가 가까운 나이 탓일까. 그는 여유감이 넘쳤다. "기본은 변하지 않았지만 연륜이 있으니까···파마를 해서 그런가"라며 눙쳤다.
가로 1620cm, 대작중 대작 '광장에, 서'를 108개의 캔버스에 담아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에겐 쉬워보이는 작품인데, "갈피를 못잡았다. 촛불을 어떻게 작업을 할수 있을까, 자꾸 미뤄, 이호재 회장(서울옥션)이 세번이나 찾아와 아직 안그렸냐"고 채근할 정도였다.
실제 사건의 복사판, 새로운 걸 제시하지 못하는 작업은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미 사진을 통해서 훨씬 더 잘 보여줬는데, 그걸 중복되는, 중복언어는 할수 없지 않나"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새롭게 쳐다볼수 있어야 하지 않나. 임옥상은 또다른 풍자를 할수있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작업 의지는 성공한 듯 보인다.
장대한 파노라마로 전개된 '촛불' 작품은 전시장에 들어와 '기념비적인 역사 기록화'로 위상을 전한다.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얼굴 찌푸리게하는 작품이 아닌 누구도 공감할수 있는 새로운 '민중미술 스타일'로 보인다.
임 화백 스스로도 만족했다. 작업할때는 너무 커서 한번에 볼수 없었는데, 전시장에 세팅을 하고 조명을 켜니 와우~감탄이 절로 나왔다면서 "자기 감동이 없으면 제 것이 아니다. 자기 감동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민중미술가'로만 보는 것은 "오해다"라며 자신은 "좌우도 아니고 아나키스트"라고 했다.
대부분 "임옥상은 왜 자기 이야기가 없냐"며 '사적인게 없고 공적인거만 있어 매력 없다고들 한다"며 민중미술가로 굳어진 프레임의 안좋은 예를 설명했다.
"나는 남녀의 상열지사를 굉장히 좋아하고 누드도 그리는데, 보는 사람들은 내 의지와 달리 해석한다"고 했다. 남녀가포옹한 그림을 만들면 "임선생 드디어 남북이 만났군요"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완전히 선입견으로 나를 보는 거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그 틀은 자신이 만들어왔다. 지난 30여년간 임옥상은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가 주로 거리에서 광장에서 작업을 해왔다. 퍼포먼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벽화도 제작했고, 사회적 정치적 집회에서 현장작업을 거칠게 해왔다.
요즘 듣는 말이 있다고 했다. "임옥상의 최대 위기"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독재든 뭐든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성장한 작가라는 인식때문. "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용기있고 행동하는 작가인데, '민주화가 됐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진담반 농담반같은 말들이 꽂히고 있다.
그는 "그렇다면 내가 한쪽 편들기 내지는 가담한다는 건데, 예술가로서 그게 말이되냐"며 "인간 임옥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대립각을 세워서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온다고 보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임 화백은 "노무현정부때도 기대한 것이 있어서인지 제일 불편했고, 김대중 정부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정권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다만 정권을 세우는데에는 일조를 했다"고 자부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그는 "엄청난 변화가 있지만 권력은 다스리지 않으면 맘대로 튄다"며 "결국 권력은 민중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배반할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고삐를 바짝 조여야합니다. 연은 연줄이 있기때문에 높이 나는 것이죠. 노무현정부도 느슨한 연줄을 갖고 있는 바람에 정권도 놓치지 않았나, 깨어있는 시민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그는 "잠들지 않는 깨끗한 영혼, 임옥상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중 작가로 불러주는건 영광스럽지만 부끄러운게 많다"고 고백했다. 그러기에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해놓은 것이 없다는 그는 이제 민중미술가에서 공공미술가로, 커뮤니티 아트 마을미술가로 진화중이다.
미술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관심을 갖고 1996년 광화문 지하철역 '광화문의 역사' 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공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또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집중하여 대중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문화 활동가로서 폭넓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창신동에 '창신소통공작'에 이어 새로운 개념의 어린이 놀이터를 개관할 예정이다.
변한 듯 아닌 듯하지만 분명한건 여전히 현실정치에 안테나를 세우고 정력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다.
23일부터 여는 개인전 '바람 일다'는 2011년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이후 6년만이다.
작품들은 정치 사회적 소재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풍자·비판·상징화한다. 전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트럼프, 아베 등 국내외 14인의 국가 원수들의 초상을 대형 가면으로 만든 설치작품 '가면무도회'로 시작한다.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과 용산 화재 참사를 주제로 물과 불의 대립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도 나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윌리엄 모리스', '존 버거', '자화상 I' 등 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그린 초상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또한 민들레 꽃씨로 제작한 노무현과 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의 초상화도 전시됐다. 한편 '여기, 흰꽃'과 '여기, 무릉도원'은 북한산의 산세를 흙 바탕에 선묘로 재현하고, 작품 하단은 만발한 꽃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 풍경을 풍유적으로 번안한 일종의 관념적 실경화이자 현대판 무릉도원으로서 이 작품들은 암울한 현재를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신세계를 향한 작가의 꿈을 대변”한다.
촛불이 바꾼 나라, 변화된 정부덕분일까.
정권에 대항하며 핏대를 올리던 이전 모습과 달리 임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흙 작업'에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민중미술'보다 '흙을 왜 썼나'하는 함의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인간은 땅위의 존재다. 하지만 땅위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착각할때가 있다. 도시에 살면서 땅, 흙을 밟지 못하고, 유리되어 살고 있다. 흙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삭막할수 밖에 없다. 내가 흙으로 작업을 한 것은 흙에 대한 관심과 흙과 친할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기본 문명의 방향을 옮겨야겠다는 의지다. 흙을 제일 느끼고 감촉할수 있는 방법은 농사다.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 보람을 느끼고 생명을 감촉할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번에 흙덩어리를 던졌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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