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중 좌·우익 혼돈 속 불갑산 집단학살 사건 규명돼야

기사등록 2017/08/01 11:31:52
【함평=뉴시스】맹대환 기자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2009년 7월16일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가정마을 뒷산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 희생지 유해발굴 현장을 공개한 가운데 유골 속에서 새싹 하나가 올라오고 있다. 이곳은 1951년 2월20일 빨치산 토벌 작전에 나선 국군 11사단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2017.08.01 mdhnews@newsis.com

 국군·빨치산 모두 아군·적군인 혼돈
 좌·우익 이념과 무관한 민간인 희생

【광주=뉴시스】맹대환 기자 = 6·25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전남 함평 불갑산사건은 해질녘 '개와 늑대의 시간' 처럼 국군과 빨치산 모두 아군인지 적군인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민간인들은 혼돈 속에서 자의와 타의로 불갑산 피난을 선택했고 결국 무참하게 학살됐다.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유해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가정마을 뒷산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벌여 159구의 유해를 발견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발굴된 유해가 빨치산 토벌작전인 일명 '대보름작전'을 벌인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가 집단 학살한 민간인이라고 규명했다.

 유해의 신원은 단 한 구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함평, 영광, 장성지역 민간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명백한 불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불갑산으로 모여들었을까.

 피해자와 유족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들은 인공시절 각급 기관에서 활동하거나 이들의 가족인 경우, 군경의 토벌작전에 불안감을 느낀 주민, 국군의 소개령으로 이주했다가 외지인 배척으로 다시 입산한 민간인들이다.

 인공 활동때문에 자의로 입산한 민간인 외에는 좌우익 이념과는 무관한 것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추정하고 있다. 빨치산과 국군 모두 아군 또는 경계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해방 후 빨치산과 지방좌익들은 군·경 가족과 경찰밀정 그리고 우익단체 간부들을 위협하거나 살해했다.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도 대보름작전 전부터 민간인 학살로 악명이 높았다. 5중대는 대보름작전 개시 전인 1950년 12월6일부터 다음해 1월14일까지 함평군 월야·해보·나산면에서 민간인 524명을 학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함평=뉴시스】맹대환 기자 = 1일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산내리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유족회 최상호 위원장과 김귀선 불갑산 유족회장 등이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산마루를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1951년 2월20일 빨치산 토벌 작전에 나선 국군 11사단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2017.08.01 mdhnews@newsis.com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공의 세상이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이유다.

 빨치산과 5중대 사건을 경험한 민간인들이 좌익·우익이라는 사상과 무관하게 안전한 곳으로 인식한 불갑산으로 집단 피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보름작전에 나선 11사단이 불갑산을 에워싸고 중화기로 불을 뿜어내자 피난민들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 신세였다.

 우왕좌왕하던 피난민들은 불갑산 자락인 해보면 광암리 가정마을 뒷산 정상으로 내몰린 끝에 빨치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됐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이다.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총격에 마치 사냥꾼이 쏜 총에 짐승들이 쓰러지듯 피난민이 죽어나갔다. 불갑산은 애기 울음소리로 진동했다. 계곡에 물이 흐르면 순 핏물이었다"

 야속한 운명이었다. 피난민이 숨진 가정마을 뒷산은 원래 봄이면 철쭉이 만개해 '꽃 잔등(고개)'이라고 불리던 야산이다. 철쭉 꽃이 피기 전 2월20일 피난민의 선혈이 꽃잔등을 먼저 붉게 물들였다.

 피난민에게는 해질녘인 '개와 늑대의 시간'이 바로 불갑산이었다.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넘어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선도 악도 모두 붉을 뿐이었다.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주민 모광원(70)씨는 "어렸을 적 어른들 몰래 나무하러 꽃 잔등에 가면 시신이 널려 있는 것을 봤는데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며 "아직 발굴하지 않은 시신을 찾아 가족 품에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함평군 불갑산유족회 김귀선(68) 회장은 "불갑산에 피난갔던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모가 희생됐는데 당시 군인들 몰래 아버지 시신만 찾았다"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연장해 죽은자와 산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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