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영국에서 연쇄 테러에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 참사까지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보수당 정권 심판론에 불이 붙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로 이어진 보수당 정권이 지난 7년간 무리한 긴축 정책을 추진한 탓에 공공 안전망이 망가졌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주간 '뉴 스테이츠먼' 등은 15일(현지시간) 맨체스터 테러, 런던브리지 테러, 그렌펠 타워 화재 등 한달새 영국에서 발생한 비극들은 공공 영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보수당 7년 재정 긴축, 인재로 이어졌나
지난 13일 발생한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는 '예고된 인재'로 드러났다.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건물 안전 관리와 부실 보수 공사에 대한 우려를 지역 당국과 의원들에게 제기했지만 '소 귀에 경 잃기'였다.
그렌펠 타워는 런던의 켄싱턴첼시 버러(자치구)가 소유한 공공 임대 아파트다. 당국은 1974년 이 이파트의 외관을 정비하겠다며 작년 외벽 보수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싸구려 건자재가 사용됐다.
현지 언론들은 그렌펠 타워의 외벽 패널이 가연성이 높은 소재임에도 비용적 효율성을 이유로 영국 전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패널은 불이 건물 전체로 삽시간에 번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보수당은 2010년 정권을 잡은 뒤 중앙 정부의 지역 당국 예산 지원을 대폭 줄였다. 7년이 지난 현재 지역 정부 대다수가 재정 안정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산 삭감의 폐해는 영국인들의 실생활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지역사회의 망가진 도로,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 도서관·체육관·보육시설 운영 중단 등이 긴축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 소방·경찰 감축으로 대응 능력 악화돼
이번 화재를 계기로 보수당의 소방 인력 감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소방당국이 신고 접수 6분 만에 빠른 대응에 나서면서 다행히 더 큰 참사를 막았지만 인력 부족 문제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현장에 투입된 한 소방관은 일간 가디언에 "원래는 한 사람이 최대 4시간까지만 화재 진압 일을 하게 돼 있는 데 벌써 12시간째 여기 있다"고 털어놨다. 불은 장장 16시간의 진화 작업 끝에야 꼬리를 내렸다.
영국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영국 잉글랜드에서만 소방관이 7000명 감소했다. 이는 곧 소방관 한 명이 감당해야할 업무량이 가중됐다는 의미다. 소방청의 화재예방 활동도 25% 가량 줄었다.
경찰 긴축 역시 이미 논란이 되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맨체스터 테러에 이어 이달 3일 런던브리지-버러마켓 테러가 발생하자 경찰 인력 2만 명을 줄인 것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속출했다.
캐머런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후 총리에 오른 메이 역시 기존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메이는 신자유주의 한계를 지적하며 표면상으로 긴축 완화를 강조했지만 그 뿐이었다.
◇ "긴축 멈추라" vs "나라빚 아직 많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실업수당 동결, 치매세(주택 보유 노인의 복지 축소) 등의 공약을 해 논란이 됐다. 국민건강보험서비스(NHS) 투자 확대를 약속했지만 보건당국 재정난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긴축을 멈추라'는 경고를 하기라도 하듯 이번 총선을 전후해 테러, 화재 등 안전 문제가 반복적으로 정국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야권은 본격적으로 긴축 폐기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런던 화재에 대해 건물 스프링클러(살수기) 설치 확대가 무산됐고 화재 안전 규정 점검이 부족했다며 "지역당국 지출을 삭감한 대가를 치렀다"고 지적했다.
메이가 테러, 총선, 화재로 이어진 악재 극복을 위해 재정 지출 확대를 검토할 거란 전망이 나오자, 보수당 일각에서는 국가 부채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긴축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보수당 정권의 생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도 있다. 압도적 다수당이던 보수당은 이제 과반 의석을 상실했다. 메이가 강력한 집권 의지를 피력하곤 있지만 조기 총선을 피하기 어려울 거란 예상이 많다.
이달 총선 이후 메이와 코빈의 운명은 완전히 엇갈렸다. 지난 11일에는 2016년 7월 메이 총리 취임 이래 처음으로 노동당이 보수당 지지율을 추월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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