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감염 노출 사고후 현재도 정신과 치료 사례도
"근무 중 감염 청소노동자 매년 100명 이상 나올 것"
【서울=뉴시스】 김현섭 기자 = "오늘도 찔렸어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청소노동자 A(54)씨. 그는 이 병원에서 일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청소를 하다 주삿바늘에 찔린 경험이 몇 번이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1년에 한 3~4번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께 뉴시스 기자와 만난 A씨는 이날도 쓰레기를 치우다가 바늘에 찔렸다고 했다. 다행히 감염위험이 없는 질병 환자에게 쓰던 바늘이었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청소할 때마다) 좀 불안하다. 만약에 이 환자가 에이즈였다면 내가 에이즈에 걸릴 수도 있는 것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9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침대 밑 바닥을 청소하다 에이즈 환자가 쓰던 바늘에 찔린 B(62)씨는 6년이 지난 현재도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다. 사고 당시 극한의 공포감을 느끼면서 우울증이 생긴 것이다.
B씨는 "찔리고 나니까 정신이 막 도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수간호사가 '아주머니 빨리 응급실 가세요'라고 하는데 눈물은 자꾸 나오지, '난 이제 죽었다. 끝이다'라는 생각도 들고. 검사 결과가 2주 후에 나온다고 하는데, 그 2주 동안 무서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병원의 감염예방조치 소홀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같은 사고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기본적 원인은 병원 측에 있다. 감염병 환자가 쓰던 주삿바늘, 수술용 칼 등은 사용 후 지정된 통에 넣어놔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선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다. 정해진 시간 안에 청소를 끝내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쫓기는 마음에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C(62)씨는 지난 2014년 겨울 에이즈 환자가 사망한 병실을 청소하다가 수술용 칼에 베였다. 손에 피가 줄줄 날 정도였다. 그 때 칼이 놓여져 있던 곳은 '창문턱'이었다.
C씨는 "당시 간호사가 '왜 조심하지 않고 베였느냐'고 했다. 누가 조심을 안 해서 다쳤겠나. 칼날이 얇은데다 색깔도 창틀하고 비슷해서 구분이 안 된다. 청소는 빨리빨리 해야하고"라면서 "에이즈라는 게 얼마나 충격적이냐. 당시 우리 소장이 병원에 '수술 칼 같은 걸 창틀에 놓아두면 어떡하느냐'고 성질을 내고 그랬다"고 말했다.
감염병 환자가 있던 병실, 수술실을 청소하기 전 병원 측의 충분한 지침 전달 여부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들마다 제각각이었다.
의사나 간호사 개인에 따라 달라질 뿐 의료진 전체 차원의 '체질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사고 후에도 어떤 질병이었는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확인됐다.
D씨는 "내가 약 3년 근무하면서 바늘에 4번 찔려봤다. 그때마다 병원에서 처치는 바로 해줬는데 무슨 환자였는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청소 전에도 '여사님 감염이니까 조심하세요' 정도가 전부다. 어떤 환자가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혈관조영실을 담당하는 E(55)씨는 "에이즈나 결핵 환자일 경우에는 얘기해주는 선생님도 있지만 안 해줄 때도 있다"며 "내가 일한 지 좀 되다보니 의사가 들어갈 때 입는 옷이나 마스크를 보고 안다. 한 마디로 '짬밥'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E씨도 지난 2015년 바닥에 떨어진 주삿바늘에 찔린 적이 있다. 바늘이 바늘집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여서 안심하고 집었는데 알고보니 덜 눌러져 있었던 것이다.
E씨는 "내가 청소했던 방으로 전화해서 '몇 시 정도에 균환자 있었느냐'고 물어보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피검사도 안 해줬다"며 "조영실은 에이즈를 포함해 감염환자들 다 온다. 지금이라면 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막 검사해야 한다고 나섰겠지만 그 땐 나도 이 일 한지가 얼마 안 됐을 때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간염 예방주사도 맞고 그랬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올해 발표한 ‘병원체 감염 위험근로자 건강보호 강화 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한복순) 보고서에 따르면 '감염병 관리대상에 어느 범위까지 포함해야 하나'(복수응답)라는 질문에 131개 의료기관 보건관리자(혹은 감염관리담당자) 중 '청소업체'를 넣은 응답자는 58.8%였다.
간호사가 93.9%로 제일 높았고 의사(93.1%), 간호조무사(90.8%), 의료기사(81.7%), 조리직(74.0%), 사무행정직(67.9%), 이송요원(61.1%) 등이 뒤를 이었다.
청소노동자가 병실, 시술실, 수술실 등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 사무행정 직원보다 낮은 것이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병원이 청소노동자들은 관리·보호해야 할 직원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며 "청소노동자들이 근무 중 질병에 감염되기까지 여러 경로가 있는데 주삿바늘 등에 찔리는 사고는 이제 해외 병원에선 안 나오는 유형이다. 의료진에게 처리 교육을 철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은 "그런데 국내에선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나도 의사 경력이 25년 정도 되는데 받아본 적이 없다. 단순히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의사, 간호사 본인들에게도 위험하다"며 "드러나지 않을 뿐 일하다가 감염되는 청소노동자가 매년 100명 이상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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