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잊고 살아왔는데…" 헤어진 가족 찾기 5명 중 1명은 '상봉'

기사등록 2017/05/29 06:30:00
【충주=뉴시스】이성기 기자 = 지난 9일 충북 충주경찰서에서 13년 전 헤어진 이모(53·여)씨와 두 아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충주경찰서는 이들 외에도 지난달과 이달 모두 3건의 헤어진 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2015.05.11(사진=충주경찰서 제공)  sklee@newsis.com  
최근 5년 동안 신청자 5명 중 1명은 만남 성공
 신청자 점점 줄고 있어…제도 개선 마련 중

【수원=뉴시스】김지호 기자 =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이모(49)씨는 20대 중반에 헤어졌던 여동생들을 경찰의 도움으로 25년 만에 만나게 됐다.

 여동생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이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992년 6월께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화재로 불이 집에 타면서 여동생들과 잠시 헤어졌다.

 동생들은 집을 수리하는 동안에만 친구 집에서 생활하고 다시 함께 살기로 했지만, 이씨의 앞길은 평탄치 않았다.

 집을 고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던 이씨를 노린 사기범죄에 당해 집수리에 쓰려던 돈과 집을 모두 뺏긴 것이다.

 이후 따로 떨어져 생활하던 이씨와 여동생들은 결국 25년간 헤어져 서로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씨는 뒤늦게라도 여동생들에게 오빠의 역할을 하고 싶어 지난달 25일 성남수정경찰서를 찾아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를 신청했다.

 여동생의 이름과 나이를 기억하던 이씨는 신청서에 관련 정보를 적어 냈고, 경찰은 온라인 조회를 통해 이씨의 경남 진주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냈다.

 경찰은 여동생(47)이 사는 진주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했고, 동생으로부터도 만날 의향을 확인한 뒤 이달 중순께 25년 만에 이씨는 눈물겨운 상봉을 하게 됐다.

 6·25한국전쟁 이산가족, 유아시절 미아·가출, 고아원에 버려지거나 입양 등의 이유로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경찰의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사업으로 최근 5년간 신청자 5명 가운데 1명은 가족을 찾았다.

 28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접수한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는 1267건으로, 264건(20.8%)은 상봉까지 이뤄졌다.

 만남 건수는 2012년 360건 중 97건(26.9%), 2013년 434건 중 71건(16.3%), 2014년 197건 중 41건(20.8%), 2015년 168건 중 29건(17.2%), 2016년 90건 중 22건(24.4%), 올해 들어서는 18건 중 4건(22.2%) 등으로 접수 건수는 매년 줄고 있다.

【수원=뉴시스】김지호 기자 =  강모(79)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친언니들이 모두 숨지고 유일한 혈육 사촌 오빠를 찾고자 지난해 7월 경기 의왕경찰서에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를 신청, 한 달여 만인 지난해 8월21일 60여년 만에 인천에 살던 사촌 오빠를 만났다. 사진은 찾아준 경찰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경기 의왕경찰서 제공)  photo@newsis.com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는 1980년대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경찰청에서 2000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경찰은 신청자가 찾고자 하는 가족의 이름, 생년월일, 관계, 헤어진 시기와 사유 등을 알려주면 이를 토대로 온라인 조회, 소재 파악 등을 통해 찾아 당사자의 의향을 물어 만남을 성사시킨다.

 이씨처럼 성인 때 헤어져 나이와 이름이 명확할 때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찾고자 하는 가족의 이름과 나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경찰관이 소재 수사를 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는 민법상 가족만 신청 가능하지만,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관은 탄력적으로 소재 파악에 나서기도 한다.

 화성시에 거주하는 김모(40)씨는 15살이던 1992년 모친이 재혼하면서 헤어졌던 고모를 찾아달라고 지난달 25일 경찰에 신청하고 이달 중순 만났다.

 어렸을 적 자신을 돌봐준 고모는 민법상 가족이 아니어서 불가능했지만, 사연을 들은 담당 경찰관은 김씨가 찾고자 하는 고모를 찾아낸 뒤 "만나고 연락하는 것은 자율입니다. 연락할 마음이 있으면 조카에게 연락해 달라"며 편지를 보냈다.

 이후 편지를 받은 고모는 김씨에게 연락해 25년 만에 서울에서 만나게 됐다.

 김씨는 "지금까지 혈혈단신 외롭게 살았는데 고모를 찾고 보니 이제 한이 풀리고 삶의 희망이 생겼다"며 찾아준 경찰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사업이 처음 시작됐을 때에서 10여년 넘게 시간이 지나면서 신청 건수도 줄었고, 전쟁, 입양, 고아 등의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취지의 사업과 달리 최근 들어 이혼이나 재산문제 등의 이유로 신청하는 일도 벌어져 경찰청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실제 지난해 접수된 90건 중 11건이 이 같은 이유로 반려되기도 했다. 만남이 성사된 22건을 제외한 나머지 16건은 당사자의 거절, 41건은 정보 불명확 등의 이유로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나 지방경찰청 민원실에 가족 관계 증빙 서류와 인적사항을 적어 신청하면 여러 방법을 통해 가족을 찾아 신청자와 만남을 주선한다"며 "사업이 십수년째 지속되면서 대상자 자체가 줄어들었고, 가족 찾기의 본래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사례도 있어 경찰청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kjh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