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경제학을 희소한 자원에 직면해 비용 대비 가장 높은 효용을 안겨 주는 실용적이고 무해한 학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 책의 진단 방향은 다르다. 오늘날 경제학은 단순한 학문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근거가 불분명한 계산에 기초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확립한 측량 법에 따라 인간의 목숨에 가격을 매기고, 한 사람이 얼마나 신용할 만한지 점수를 매기며, 환자들 중 치료받을 사람과 놔둘 사람을 점수를 매겨 구분 짓는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거시적인 지구적 정치·경제의 운영과 국가 정책 방향에서 시작해 배우자 선택, 직업 선택, 성형 수술 등과 같은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인간관과 계산적 합리성이 전면적으로 침투해 지배한다.
로스코는, 경제적 논리는 정교한 쇼 같은 것으로서 우리가 쓰는 언어와 특수한 장치에 기대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도덕적 문제들을 어떻게든 기술적 시뮬레이션으로 환원하기 위해 기를 쓴다.
저자는 그 현장으로서 집 사기, 교육 받기, 주식 거래하기, 사랑에 빠지기, 병에 걸리기, 죽음과 주검을 거두는 과정 등 일상적인 환경을 탐사한다.
이 책은 경제학이 어떻게 쇠사슬을 끊고 실험실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홍기빈 옮김, 384쪽, 1만7000원,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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