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례없는 길'가는 영국·EU·…신경전 팽팽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9일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한다. 그는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탈퇴 통보 서한을 전달한 뒤 의회에서 관련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EU 회원국의 탈퇴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브렉시트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사실상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양측은 협상 시작 전부터 첨예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 정부는 EU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진정한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EU는 '체리피킹'(유리한 것만 챙기는 행위)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메이 총리는 "배드 딜'(bad deal) 보다 '노 딜'(no deal)이 낫다"며 EU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투스크 의장은 합의 불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영국이라고 경고했다.
◇ 하드 브렉시트 상쇄할 무역 협정 가능할까
브렉시트의 최대 관건은 무역이다. 메이 총리는 EU를 완전하게 떠나는 '하드 브렉시트'(EU 단일시장·관세동맹 탈퇴) 방침을 천명했다. 또 '반쪽짜리' 탈퇴는 없다고 거듭 밝혔다.
리엄 폭스 통상장관은 지난달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글에서 브렉시트에 대비해 한국 등 12개 나라와 이미 비공식적으로 양자 무역 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U가 얼마나 호응해줄 지는 미지수다. EU로서는 블록 통합에 반기를 든 영국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 일각에선 영국산 제품에 대한 폭탄 관세, 기업 활동 규제 등 '징벌적 조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협상 기한인 2년 안에 EU와 합의를 보지 못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일반 규정대로 교역을 한다. EU는 영국의 최대 교역 상대다. 교역 혜택이 사라지면 그만큼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 이민, 사법권, 안보 협상…'이혼 합의금'도
메이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를 무릅쓴 이유는 국경 통제를 위해서다. 유럽은 단일 시장을 통해 국경없는 무역 지대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EU 시민들은 비자 없이도 다른 회원국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수 있다.
현재 영국에는 EU 시민 300만 명, EU 회원국에는 영국인 100만 명이 거주 중이다. 양측은 브렉시트 이후 이들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하느냐를 놓고 협의를 진행한다.
'이혼 합의금'도 문제다. EU는 영국에 연금 등 회원국으로서 부담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내 놓으라고 압박할 수 있다. 이 금액이 500억 파운드(약 70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양측의 입장은 엇갈린다. 영국에선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부채를 탕감받았듯 이혼 합의금을 면제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EU에선 영국의 지불 거부시 국제사법재판소(ICJ) 행도 가능하단 얘기가 돈다.
그 밖에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사법권 적용, 영국 주재 EU 기관들의 이전 등도 논의해야 한다. 유럽 전역에서 테러 위협이 높아진 상황에서 양측이 안보 공조를 합의할 지도 주목할 요소다.
◇ 협상 기한 충분할까…탈퇴 번복 가능해
리스본 조약 50조의 규정대로 2년 안에 브렉시트 협상을 마무리 짓는 건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브렉시트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2년 내 합의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협상 기한도 연장되지 않으면 영국은 EU를 자동 탈퇴한다.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협상 결렬시 영국과 EU 모두에 '파괴적'인 경제적 피해가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친 EU파 인사들은 브렉시트가 취소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09년 리스본 조약 50조 체결 당시 초안을 작성한 존 커 상원의원은 협상 중에도 탈퇴 번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커 의원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많은 회원국들이 법적 절차를 밟던 중 입장을 뒤집었다"며 각국 총선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 정책 노선이 바뀌면 EU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 '유나이티드 킹덤' 분열 위기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렉시트로 인해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인 영국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도사린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또 다시 감지되고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중앙 정부의 '하드 브렉시트'를 수용할 수 없다며 2018년 가을에서 2019년 봄 사이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재추진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민족주의 '신 페인'(Sinn Fein) 당이 중앙 정부가 지역 주민 대다수의 뜻에 반하는 브렉시트를 추진한다며, 영국을 떠나 남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중에는 어떤 지역의 분리독립 투표도 허용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 '브렉시트 투어'를 진행하며 '연합 왕국' 유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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