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靑무단점검' 고발에 불쾌감…"부당한 정치공세"
靑참모진, 일괄사퇴·거취일임·권한대행 보좌 등 고민
【서울=뉴시스】김형섭 기자 =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퇴거가 12일 이후에 이뤄질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경호 문제를 이유로 다음 주 중 새벽 시간대에 옮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길 준비가 아직 덜 돼 오늘 중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며 "삼성동 사저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바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에 따라 현직 대통령 신분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사저가 낡을 대로 낡아 여러 준비가 필요한 탓에 일단은 관저에 체류키로 한 상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을 확신해 당장 거처를 옮길 준비도 해놓지 않았고 경호시설도 없는 상황이다.
1983년에 지어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는 비가 샐 정도로 노후한 주택인 데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떠난 뒤 4년 넘게 빈집으로 남겨져 난방시설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 여유 부지도 없어 아직까지 경호동 건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파면 결정이 내려진 당일인 전날 경호실과 총무비서관실 인원을 보내 경호와 난방 시설 등을 점검한 데 이어 이날 삼성동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입주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 돌입했다. 낡은 문짝과 창문 등을 교체하고 통신망과 보일러 등에 대한 보수 작업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번 주말 안에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으로 '이사'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사저 개보수에 시간이 필요해 빨라야 12일, 혹은 다음 주로 시기가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동 중 경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교통량이 적은 새벽 시간대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삼성동 관저가 엉망인 상황"이라며 "집수리에만 며칠 걸릴 것 같아 하루 이틀 안에 이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인 만큼 언제까지 청와대를 나가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다만 관저를 빨리 비우지 않을 경우 '판결 불복'이나 '버티기'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박 전 대통령 측은 삼성동 사저의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빨리 청와대를 떠난다는 방침이다.
실제 이날 오후 노동당은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무단점거하고 있다"면서 건조물침입·업무방해·군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형사고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즉시 사저로 옮길 상황이 여의치 않아 청와대 시설관리책임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허가 아래 잠시 관저에 기거하고 있는 것"이라며 "청와대를 언제까지 떠나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데 고발을 하는 것은 부당한 정치공세"라고 지적했다.
탄핵심판 결과와 관련한 박 전 대통령의 공식입장이나 메시지가 나올지 여부도 관저 퇴거 시점이 정해진 이후에야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탄핵심판이 전원일치로 인용되자 큰 충격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관저에 머물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 파면 직후 일부 참모들과 관저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침통한 표정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잠잠히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결백을 확신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탓에 대국민 메시지 발표 여부에 대한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은 이날도 전원 출근해 비상근무체제를 이어가며 관저 퇴거와 대국민메시지 문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박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은 만큼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청와대를 나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청와대 참모들은 일단 수시로 회의를 가지며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상황을 점검하고 어느 때보다 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탄핵 찬반 집회 상황을 예의주시할 방침이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주인이 사라진 청와대 참모들의 거취도 일단 관저 퇴거 문제가 해결된 이후 정리될 전망이다.
수석급 이상 참모들 사이에서는 거취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 방안이 이야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괄사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취 일임 ▲차기 대선 종료 시까지 황 대행 보좌 등이 그것이다.
참모들은 자리 욕심을 부린다는 비판과 탄핵사태에 대한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탓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거꾸로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만뒀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가는 날까지 참모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관저 퇴거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입장을 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phites@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