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街 대관업무 '올스톱']'포퓰리즘식 규제정책' 봇물에도 속수무책

기사등록 2017/02/20 14:47:23
대형마트·백화점 월 4회 휴무·편의점 심야영업 금지·전안법 등
실효성 없거나 행정편의 '탁상공론' 많지만 정치권에 하소연 못해
"사회적 합의 쉽지 않지만 소비자 만족도 우선 따져가며 입안 해야"

【서울=뉴시스】김종민 기자 = 탄핵정국으로 앞당겨진 대선 시계에 맞춰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서민 '재벌 때리기'식의 각종 포퓰리즘 규제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정작 이해 당사자인 대형 유통업계에선 이렇다할 의견도 못내놓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다.

 이들 법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업계와의 논의나 의견수렴 없이 입안된 실효성이 없거나 행정편의주의식 '탁상공론'식 법안들도 많다.

 하지만 개별기업들이나 관련 협회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권에 하소연할 사회적 분위기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더욱 호되게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업계 규제 관련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모두 2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대형 유통업체들의 무분별한 확대로부터 전통시장 등 중소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입점, 영업시간 등에 대한 규제와 관련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28일 시행에 들어간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을 둘러싼 파장도 확산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10월 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매주 일요일, 즉 월 4회로 확대하고, 의무휴업일 적용 대상에 백화점과 면세점, 하나로마트를 포함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발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매월 2, 4주째 일요일에서 매주 일요일로 확대됐다. 현행 월 2회 휴무에서 월 4회 휴무로 바뀌는 셈이다. 게다가 설날, 추석 당일 휴업은 물론 영업 시간까지 단축했다. 지금은 자정 이전에 폐점하고 다음날 오전 10시 이후에 영업을 개시할 수 있지만 개정안에서는 대형마트의 영업 종료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2시간 앞당겼다.

 영업규제는 대형마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백화점과 시내면세점에 대해 새로 규제를 신설했다. 백화점과 시내면세점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영업이 제한되고, 백화점은 매주 1회, 시내면세점은 매월 1회 휴업하도록 했다. 설날과 추석 당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농협하나로마트처럼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55%이상인 대규모 점포에 대해서도 대형마트와 똑같은 규제를 받는 내용이 들어갔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6일 '골목상권 보호 및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편의점 심야영업 금지', '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휴일 규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편의점 심야영업 금지에 대해 편의점주은 자율성을 침해하고, 골목상권 보호와도 별다른 관련성이 없는데 왜 심야영업 금지를 추진하는 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극렬 반대에 나섰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며칠 뒤 "일부 표현상 오해로 소비자들의 걱정이 있었다"면서 "가맹점주가 영업시간을 자율적으로 할수있게 하겠다는 내용"이라고 정정하며 한발 물러섰다.

 전안법에 대해서도 국회와 정부가 현실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법을 바꿔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죽이고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는 비난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부 수입유통업자들은 서명운동 진행과 함께 헌법소원을 청구키로 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제조업자 뿐만 아니라 의류·잡화 등을 수입하는 소규모 수입·유통업자들도 모두 품목별로 20만~30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치르고 KC인증을 받아 인터넷에 게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불황과 물가인상으로 고통받는 소상공인과 서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일부 핵심조항을 1년 유예하기로 했지만 한시적 유예일 뿐이라 소상공인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업계에선 봇물처럼 터진 일련의 유통 규제 법안들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또 대형 쇼핑몰, 편의점 규제로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이 활성화 될 것이라는 논리 자체가 비약이라는 분석을 통해 법안의 실효성에도 고개를 젓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 도입 이후 반사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던 전통시장 매출은 2011년 21조원에서 2012년 20조1000억원, 2013년 19조9000억원으로 되레 감소했다"면서 대형마트 휴무규제로 전통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의도는 빗나갔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마트가 매주 일요일 쉬게 될 경우 소비자들이 구매를 보류하거나 포기하는 소비증발 효과만 생길뿐 경제에 약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형마트가 갈수록 구매뿐 아니라 식사장소, 체험 및 여가의 장소가 되는 추세인데 소비자들의 불편과 불만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 취지는 어느정도 이해되지만 서울시내 대형 백화점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의 구매 비중도 상당하다"면서 "매주 문을 닫아야 한다면 매출 감소는 물론 장기적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입 등에도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들과 외출이나 외식을 주말 밖에 할 수 없는 직장인들의 경우 마트와 백화점은 토요일에만 이용하라는 이야기인데 소비자들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기동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대형점 규제입법의 동향과 발전대안' 보고서를 통해 "현재 거론 중인 법안 대다수가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음에 따라 실효성을 평가한 뒤 소비자 만족도를 살펴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jmki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