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1월 2일자 사설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이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안보까지 뒤흔들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FT는 ‘서울의 스벵갈리’인 최순실로부터 비롯된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깨끗하게 진상을 밝히는 것 뿐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스벵갈리는 프랑스·영국계 작가 조르주 뒤 모리에의 소설 '트릴비'(1895)에서 가난한 음치 소녀 트릴비에게 최면을 걸어 가수로 성공시킨 뒤 조종을 하는 최면술사로 등장한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최순실을 제정 러시아 시절 수도승인 그리고리 라스푸틴(1869~1916)에 비유하기도 했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몰락 직전 황실에 나타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신임을 등에 업고 인사권 전횡을 일삼는 등 국정을 쥐락펴락한 인물이다.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의 내용은 한국의 국격을 한 없이 추락시키는 부끄러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에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잔뜩 쌓여 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언론들이 전한 뜨거운 뉴스였다.
지난해 11월 23일 뉴욕타임스(NYT)는 “파란 집(Blue House, 청와대)의 파란 알약(blue pills, 비아그라)이 파란 농담(blue jokes, 음담패설)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청와대에서 수백정의 비아그라 등 유사한 약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 국민들 사이에 온갖 억측과 야한 소문들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케냐 영자지 나이로비 뉴스는 ‘한국 대통령은 왜 케냐 방문을 위해 비아그라를 구매했나’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 스캔들을 보도했다. 나이로비뉴스는 청와대가 케냐 방문에 대비해 비아그라 360정을 구입했다면서 “이는 일반적인 용도가 아니라 치료 목적이었다”라고 전했다. 나이로비뉴스는 이어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해있다"고 덧붙였다.
분노한 한국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 이후 거리를 메운 촛불 시민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촛불시위와 정정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제까지 한국은 해외무대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려 왔다. 남북한 간의 살벌한 대치상황과 후진적인 정치문화,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사 갈등 등이 한국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촛불시위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까. 놀랍게도 촛불정국을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 시민들이 오히려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언론들은 매주 백만 명을 넘나드는 시민들이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단 한 건의 폭력적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을 하고 있다.
NYT는 “한국의 시위가 축제처럼 변했다”고 찬탄했다. AP통신은 “놀라운 변신, 평화가 한국 시위의 특징이 되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FT는 지난 4일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에서 개혁이 이뤄진다는 데에 돈을 걸었다. 그들은 한국의 저평가된 주가, 탄탄한 경제기반, 실적 개선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이 지금은 대통령과 삼성 같은 재벌기업들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로 혼란스럽지만 이번 사건이 경제 개혁을 단행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외국 투자자들은 오히려 한국의 주요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자본 흐름 추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외국인 자본 순유입을 기록한 유일한 신흥시장이다.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6일까지 한국 증시에는 1조8000억 원의 외국인 자본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인도,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 신흥국에서는 총 180억 달러(약 21조 6540억 원)의 외국인 자본이 순유출됐다.
FT는 "투자자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한국 경제를 짓누른 정실 자본주의를 실감하게 한 계기로 작용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재벌 개혁의 동력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악명 높은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바꾸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노무라증권의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나는 “국정 농단 스캔들은 한국에서 기업 지배구조를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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