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행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양국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는 군의 관여 및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 사죄와 반성 표명, 그리고 그에 대한 이행조치"라며 "일본 정부 예산을 재원으로 한 화해·치유재단 사업실시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그리고 마음의 상처 치유를 도모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황 대행은 지난해 12월29일 출입기자간담회에서도 "국가 간 협의를 거쳐서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연속성 있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 생각한다"면서 기존 정부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나 국무회의 같은 공식 회의석상에서 위안부 합의 관련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권한대행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황 대행의 이날 메시지는 일단 주한 일본대사관과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공론화하며 전면전을 선포한 일본 정부의 공세 대응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의 불쾌감 섞인 발언과 자국 대사들의 일시소환 조치로 국민 감정을 건드리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한 문제 제기 차원이라는 게 황 대행 측의 설명이다.
실제 일본 정부는 부산 총영사관 앞에 또다시 소녀상이 설치되자 공세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6일 주한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 등을 일시 귀국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협의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 협의도 연기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NHK에 출연해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하면서 부산과 서울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아베 총리는 소녀상 설치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국가적 신용 문제'까지 제기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황 대행은 일본 정부의 공세적 대응은 양국 합의 이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일본 측의 경거망동에 우회적인 비판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에 있다고 못박은 것도 일본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 상처 치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한·일관계 악화만 불러올 뿐이라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이는 가뜩이나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마저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태도를 견지할 경우 합의 이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상황 판단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조속한 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아베 총리가 국제적 여론전에 나설 것에 대비해 '한국의 합의 미준수'라는 일본 정부의 프레임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렸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국내 정치가 불안한 가운데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한·일 위안부 합의 갈등을 계기로 외교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황 대행이 직접 대일(對日) 메시지 발신에 나선 배경으로 풀이된다.
황 대행의 발언은 동시에 위안부 합의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재협상 내지는 합의 백지화를 주장 중인 야권에 제동을 건 것으로도 해석된다. 위안부 합의 당시부터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야권은 최근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한·일 갈등을 계기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예산이 부족하면 국회에서 예비비라도 올려줄테니 10억엔을 빨리 돌려주자. 정말 치사하고 굴욕스럽다"며 사실상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위안부 합의는 일본이 처음으로 정부 책임과 군의 관여 문제를 인정한 데 의미가 있는 것이며 국가간 합의이기 때문에 재협상이나 파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황 대행이 "한·일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면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 존중을 강조한 것도 야권의 위안부 합의 흔들기에 자제를 촉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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