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외길 인생 60년'을 뚜벅뚜벅 걸어온 원로 연출가 임영웅(80) 극단 산울림 대표가 묵직하게 말했다.
지난해 말 훈장을 받으러 가기 전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는 그는 "그전의 상들은 잘하라고 주는 것이라 받았지만 훈장은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만 알았다"며 내내 겸양의 미덕을 보였다.
연극 토양이 척박한 한국에서 연극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 아니냐고 하자 "그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직후에는 특히 배우들이 먹을 것이 없어 힘도 내기 어려웠어요. 이후로도 연극은 항상 힘들었죠."
방송국 PD와 신문기자 생활도 한 임 대표가 연출로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대표작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1969년 이 연극의 국내 초연을 맡은 뒤 수차례 무대에 올렸다.
그는 이 난해한 부조리극에 대해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아주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아주 잘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임 대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렵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극계 거목' 으로 불리는 그는 "여전히 연극을 통해 배운다"고 했다. "연극은 예술 중에서 제일 인간의 삶과 가까이에 있어요. 연극 자체가 무대 위에서, 사람의 인생살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성격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니 연극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러니 계속 배우는 수밖에요."
1985년 홍대 앞 자택을 허물고 세운 산울림 소극장 건물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지하 1층 극장은 여전히 그대로다. 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 벽은 이 극장을 거친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로 장식됐다.
하지만 임 대표와 한번 작업한 배우들은 그와 인연의 끈을 절대 놓지 않고 있다. 윤석화 등은 공개석상에서 임 대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배우들이 물론 연습할 때는 속상한 것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막을 올리고 공연이 끝나고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죠. 연극은 협업의 예술인만큼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 같이 훈련이 돼 있어야 해요. 연극이라는 작업은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전쟁이거든요."
"우리 연극할 때는 먹을 게 귀했어요. 그래도 어쩌다 누군가 먹을 걸 가져오면 절대 먹지 않았죠. 스태프들도 못 먹게 했죠. 배우들이 먹어야 힘을 쓰니까. 그런 배려 때문에 그렇게 혼을 내도 배우들이 미워하지 않나 봐요. 허허."
원로 연출가는 60여년동안 '가난한 연극쟁이'로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연극 연습하고 공연할 때는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서인지 한 번도 고통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연극을 하고 있을 때 살아 있는 걸 느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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