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문화人-⑨]산문집 낸 배종옥 "배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기사등록 2016/11/06 13:14:20 최종수정 2016/12/28 17:53:11
탤런트 배우 교수 작가로 '인생 분투기'
'배우는 삶, 배우의 삶' 첫 출간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여고시절 난생 처음 연극을 보았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비극 '피의 결혼'이었다. 하얀색 레이스가 풍성한 블라우스를 입은 여배우가 무대가 가운데 등장했다. 그 여배우에게 흠뻑 빠지고 말았다.  

 그 공연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연극이었다.  "저렇게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 생애 처음으로 전적으로 반한 세계, 꿈을 꾸었다.

 이후 연극을 하겠다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간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연극영화과 지망하기에는 현실이 그야말로 현실적이었다. "눈에 띄게 예쁜편도 아니었고,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른바 집안의 빽도 없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집안의 반대도 걸림돌이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착실한 남편 만나서 결혼을 하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연극영화과에 가서 그 무대에 단 한번이라고 꼭 서보고 싶었다." 그 간절함때문이었을까. 대학에 한숨에 붙었고, "이미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무대에 서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녹록치 않았다. 대학 2학년때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배우가 되는 학생들도 있었다. 재능도 없고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풀이 죽었다. 3학년때 연기에서 무대장치쪽으로 전공을 바꿨다. 무대 뒤에서 무대 위에 서는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순간이 다가왔다. 후배를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한 선배가 문득 물었다.

 "너 탤런트 해볼래?'

 연기는 포기한 상탠데 어떻게 말해야 되지? "기회가 된다면 할수도 있겠죠." 이 말은 방송국의 문을 열게 했다.

 KBS 일요아침드라마 '해돋는 언덕'에 출연했다. 배우로서 첫 출발,1985년이었다. 꿈을 이뤘지만 쉽지 않았다. 연기를 못해서 항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매일 연기를 그만두고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1998년 KBS 월화 드라마 '거짓말'은 30대 중반 ‘기대감 없는 배우’에서 진정 '배우'로 거듭났다.

 도도한 도시 여성 캐릭터로 인식된 배우 배종옥(52)이다.  '노희경의 페르소나'로 떠오른 배종옥은 '마니아 드라마'의 시초가 됐고 '똑부러지는 여자' 배종옥' 브랜드를 창출했다.  

 배종옥은 "'거짓말'을 정말 사랑했다"고 했다. 촬영 전날엔 현장에서 입을 옷을 모두 준비해놓고 설렘에 밤을 지새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촬영 날만 기다렸다. 그런 나의 마음은 화면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더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이해됐다. 그렇게 서서히, 그러나 마침내 멜로를 극복했다."

 이후 노희경 작가의 '바보 같은 사랑'(2000) '꽃보다 아름다워'(2004) '굿바이 솔로'(2006) '그들이 사는 세상'(20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를 통해 '배종옥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3)과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2007) '천하일색 박정금'(2008)까지 30년여 동안 꾸준히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배우 배종옥의 행보다.

 배우 윤여정의 말은 배종옥을 이 한마디로 딱 정리한다. "종옥이가 자기 느낌을 내는 배우잖아."

 스타가 됐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이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었지만 도전을 했다. 드라마로 영화로 연극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넓혀가면서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중앙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이론과 실전의 연기 경력을 겸비한 연기자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배우에서 10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서 교수로 후배들의 문을 함께 열어주고 있는 그녀가 최근 작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첫번째 산문집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을(마음산책) 출간, 배종옥의 인생 분투기를 솔직하게 털어냈다.

 "작업하는 동안 그 시간 전부를 작품에 쏟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날 설득하지 못하는 작품은 죽어도 할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안 한다. 돈벌이가 안 되어도 하고 싶은 건 한다. 하고 싶어서 선택해야 어떤 순간이 와도 후회가 없다. 미련도 없다.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이론과 실전의 여배우가 현장에서 또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끝까지 배우이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책은 배우 배종옥을 이루고 변화시킨 고민에 대한 기록이다.

 배우와 연기에 대한 무수한 고민을 통해 배우 배종옥이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이 일하는 곳인 현장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것,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을 책 제목으로 한 이유다. 책은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내 인생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애정 어린 위로가 담겼다.  

 배종옥은 "꿈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비록 그 시간이 지난하더라도 꿈에 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한다.

 "배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죽을 때까지 물으면서 가야 한다는 것… 그게 그러니까, 끝없이 고민하다 보면, 공부하고 배우다 보면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어렴풋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jb@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