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서 사진작가 임안나 발굴 첫 전시로 주목
나얼·이혜영·승효상등 다양한 개인전 기획 화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화랑은 그림만 파는 곳이 아니다. 작가들의 데뷔 무대이자, 작가들이 소통하는 삶의 무대다. 화랑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획 화랑', 또 하나는 '대관 화랑'으로 나뉜다. '기획 화랑'은 화랑에서 작가를 발굴하거나 섭외해 신작등을 발표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전시장이고, 대관화랑은 말 그대로 전시장을 빌려주는 곳이다. 쉽게 말해 '기획 화랑'은 화랑에서 돈을 들여 작가를 초대해 전시를 하는것이고, '대관 화랑'은 작가가 돈을 내고 전시하는 공간을 말한다.
국내에는 국제, 현대, 가나등 3대 대형화랑과 진, 선, 노화랑, 이화익갤러리등이 기획 화랑으로 유명하다. '기획 화랑'은 국내 전시 트렌드를 이끌고, 작가들을 프로모션한다. 국내 중대형 화랑은 대부분 1세대 화랑주들이 여전히 경영에 참여, 전시 기획까지 아우른다. 큐레이터가 있긴 하지만, 터줏대감격인 화랑주들의 '감'을 따라잡긴 쉽지 않고, 그들의 입김을 무시할수 없다. 때문에 미술관과 달리 화랑에서의 큐레이터는 화랑주인의 보조격으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탓에 1,2년안에 화랑을 나오는 큐레이터들이 상당수다.
이런 상황속에서 매월 색다르게 펼치는 진화랑의 기획전이 주목받고 있다. 1972년 설립, 한국현대미술 1세대 화랑인 진화랑은 40여년째 통의동을 지키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가 야요이 쿠사마의 거대한 '노란 호박'이 화랑에 설치되어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화랑이다. 2010년 진화랑 유위진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후 아들인 유재응 대표가 진화랑을 맡으면서 국내 중견 원로작가들의 근현대미술을 선보이던 전시장에서 신진 작가들의 발랄하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전시공간으로로 탈바꿈했다. 붉은 벽돌집을 개조한 전시장은 매달 생기넘치는 현대미술로 활기찬 모습이다.
회화전시는 기본, 사진, 설치,미디어와 아트컬래버레이션등으로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고, 최근 세간의 화제가 된 배우 이혜영의 전시에 이어 건축가 승효상(64)의 상업화랑 첫 전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큐레이터가 상주하고 있는 덕분이다.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이끌어 미술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작가들을 연결하겠다"는 신민 큐레이터는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작가들을 세상에 소개하겠다" 는 의지가 강하다. 화가가 되려고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후 큐레이터로 인생행로를 바꿨다.
◇ 진랑에서만 6년째 큐레이터
"벌써 6년째네요. 저도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환상을 가지고 뛰어들었어요."
'너의 성향에는 큐레이터가 딱 어울린다'는 이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 교수가 진로에 대한 제안을 했다. "너는 설명을 잘하고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기 때문에 큐레이터로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그 말은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게했다. "나는 미술을 사랑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쁜 그림만을 그리게 될 것 같았다"는 신민은 "그것보다는 다양한 작품세계를 접하고 소개하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아" 그림을 접었다.
한국화 전공자로는 이례적으로 예술학과로 석사과정에 들어가 현대 미술사와 미술철학 관련 공부를 했다. 대학원 졸업후 미술관보다 갤러리문을 두드렸다. "미술관은 화랑보다 조직이 큰 만큼 분업화 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일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작가와 작품을 직접 핸들링하기까지의 미래가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취업도 쉽지 않았다. 취업사이트로만 수십군데 갤러리에 지원서를 냈지만 석사출신은 배제당하기 일쑤였다. 저가의 월급으로 고용하기가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어느 날 한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다. "직원이 두 명 뿐이라 화장실 청소부터 다 직접 해야하고, 점심은 집에서 챙겨와서 먹어야 하는데 과연 버틸 수 있겠느냐"는게 조건이었다.
"일단 시작이 반이다 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다 할 수 있다고 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 겨울이었는데 지하에 있는 갤러리는 난방이나 온수가 나오지 않는 공간이어서 정말 혹독하게 추위를 견디며 일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서 열심히 일했고, 영세한 전시장이라 기자 들이 관심이 없어서 홍보도 안됐는데, 도록을 들고 신문사를 직접 찾아가서 기자들을 만나고 홍보에 매달리기도 했었죠."
그렇게 2년이 후딱 지나갔고, 진화랑에서 러브콜이 왔다. "기획의 권한을 줄 테니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전시들을 기획해 달라"는 주문은 신민을 정식 큐레이터로 나아가게 했다.
◇ 가수이자 작가 나얼 개인전, 가장 '행복했던 전시'
나얼은 가수라는 이유로 오히려 본래 미술작가로 활동해 온 영역이 크게 조명 받지를 못했다. 신민 큐레이터는 "그런데 작품세계가 웬만한 전업 미술작가들보다 완성도가 높았고 차별성이 있었다"며 "뿐만 아니라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미술은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로서 상업적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잘 구축해와서 작품세계의 흐름이 훌륭했다"고 말했다.
전시를 하기까지 우려도 있었다. "셀럽을 전시하게 되면 유명인사라서 전시를 했다거나 작품보다는 연예인으로서 부각이 될 수 있는 시선" 때문이었다.
"이 점을 불식시킬 만큼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선, 나얼의 기존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기획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의 포트폴리오 중 대표작들을 뽑아서 현재까지의 흐름을 보여주고, 신작들은 구분되도록 중,대형 사이즈로 선보였고, 또 전시도록을 나얼이 직접 디자인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결과는 대히트였다.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몰렸다. 갤러리 문여는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전시 끝날때까지 이어졌다. 도록도 전시 중간에 동이 나서 도록 2쇄를 찍기도 했다.
"작품도 기대 이상으로 많이 판매되어서 수입도 컸죠." 신민 큐레이터는 "작가도, 갤러리, 관람객도 행복했던 전시였다"면서 "그 전시는 이색 전시의 성공사례로 새로운 형태의 기획에 대한 도전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동력이자, 나의 기획에 대한 신뢰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후 연예인 전시 문의가 이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가장 공들인 전시는
어느날 임 작가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라며 엽서크기의 테스트용 사진 한장을 보여준게 시작이었다. 작가는 대형화랑에서 전시를 꿈꾸고 있었다.
진화랑은 이전에 사진 전시를 한번도 개최한 적이 없었다. 신민 큐레이터는 임안나 작가에게 받아온 사진 한장을 며칠간 바라보다가 전구가 번쩍한 느낌을 받았다.
"진화랑에서 2세경영이 시작된 후 처음 소개하는 작가인만큼 작가의 넓은 스케일을 끌어내고 싶었아요.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작가는 놀라서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는데 저의 적극적인 태도에 손을 잡더라고요."
기대반 두려움 반으로 꼼꼼히 준비했다. 전시 광고와 초대장은 물론이고 도록까지도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했다. 한달 간 숱하게 밤새우며 준비했다. 수많은 통화, 메일을 주고받고, 작업실에 방문하고, '서로 화이팅'을 연발하며 보냈다.
2012년 5월 전시 오픈식은 대성황이었다. 첫날 2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들어와 북새통을 이뤘고, 매체에서도 임안나 작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3개월 후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출품, 사진작품이 솔드아웃되는 이례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그렇게 진화랑에서 선보인후 작가는 '2013 올해의 여성 문화인상'과 '수림사진문화상'을 수상하며 국내 독보적인 여성 사진작가로서 발돋움했다.
"큐레이터로서 기쁜건 무명의 작가가 세상에 알려지며 이름을 얻기 시작하는 순간이죠." 특히 기획한 전시를 통해서 작가가 해외의 갤러리나 미술관 전시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가 가장 보람있다"고 했다.
신민 큐레이터는 "대중에게 특별한 전시,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1년에 한 번 이상은 정통미술 외의 타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초대한다"고 했다.
그동안 뮤지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겸 건축가 등의 전시를 선보이면서 우연히 승효상 건축가와 다리가 놓아졌다. "큐레이터는 무식한 용감함이 제 1원칙이에요. 무조건 승효상 건축가에게 다가가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지요."
승효상은 큐레이터라고 명함을 내밀며 전시를 하자고 하니 황당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1년간 신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일본 출장길까지 쫒아다니며 전시를 하자고 매달렸고, 승효상 건축가는 열정적이고 집착이 강한 미모의 큐레이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14일 진화랑에서 개막한 승효상의 '열두집의 풍경전'은 '승효상의 주택 건축'의 속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도면을 연필로 다시 그리는 행위, 신이 조망하 듯 그려진 건축가의 작업이 작품처럼 전시됐다.
이번 전시는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승효상의 건축 철학은 물론, 그 건축을 빛내는 임안나(사진), 강석호(조형), 지호준(프로젝션 맵핑)의 작품도 함께 한다.
상업화랑에서 처음으로 건축가 전시를 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가장 오래된 갤러리에서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역할, 그 초심때문이다.
신민은 "갤러리라는 공간은 그림을 통해서 삶을 다시 느껴보는 공간이다. 건축 역시 삶을 매개하는데 보통은 건축에 직접 가보지 않으면 감상의 기회가 없다"면서 "그래서 건축가 역시 삶을 이야기하는 한 명의 작가라는 생각으로 갤러리로 들어와 갤러리의 공간을 통해 건축을 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을 성찰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마련되어 관람객들과 소통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협업으로 이뤄진다. 이 협업을 조절하는게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다양한 작가, 다양한 전시를 펼쳐오면서 배움도 많고 그만큼 자부심과 자신감도 생겼다"는 신민 큐레이터는 "앞으로 어떤 일의 도전에 더욱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미술시장 블루칩 화가 이왈종 화백은 "신민의 대학졸업 전시작품을 보았을때 잘 그렸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림을 계속 그리는 길을 가도 좋을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고 느낌이 남달랐다"며 "다양한 큐레이터를 접했는데 신민큐레이터는 작가와 종사자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감성에서 순수성이 엿보였고, 이 부분은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출신으로 여유로운 정서와 세련된 도시적인 감성을 배합할수 있는 능력은 마치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잘했을때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 범위가 넓은 것 처럼 앞으로 아우를 수 있는 상상력과 무대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민은 "큐레이터를 하면서 무엇보다 겸손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큐레이터는 조연이기 때문에 나를 낮추고 작가의 세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또 관객의 감성과 수준이 다 다른데 예술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최대한 모든 관객,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게 중요합니다."
신민은 "큐레이터는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자, 좋은 작가와 작품으로 전시라는 드라마를 만드는 프로듀서"라고 정의했다.
"큐레이터로서 한 작가의 인생이 더욱 발전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가슴 벅차는 일이고, 저 역시 그 발전에 계속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므로 행복한 선순환이 계속 됩니다."
전진하는 큐레이터로서 앞으로 목표가 뚜렷했다.
"외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고 해외 미술관계자들과 교류로 국내의 좋은 작가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이 저에겐 중요한 숙제예요. 무슨일이든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걸 알아요. 지금까지 다양한 전시를 했다면 내년부터는 함께 했던 작가를 정해서 좀 더 깊게 작가들의 무대와 판로를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작가들과 함께 미술로 행복한 세상을 계속 만들어나갈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