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선두로 팔순의 하종현 화백을 봄날을 맞게 한 것은 '마대 페인팅'이다. 누런 마대에 물감을 밀어넣어 배어나온 '접합'시리즈. 1974년, 가난 때문에 택한 재료였지만 '마대'는 하종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마대의 보은'이 빛난 건 40년후다. 2014년부터 하종현의 '마대 페인팅'은 '한국의 단색화'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였다.
'마대 자루'가 화가를 만나 '신분 세탁'이 된 셈이다. 상남자처럼 굵고 거친 삼실로 짠 '마대'의 생김새 덕분이었다.
그런데, 하종현 화백 말고도 '마대'에 반한 작가가 또 있었다. 하 화백이 한창 마대 작업을 하던 그 시기인 1970년대 중반, 신성희 화백(1948~2009)도 캔버스가 아닌 올이 성근 마대위에 마대를 그리며 본격적인 마대 작업에 주력했다고 한다.
채색 캔버스를 잘라 엮는 일명 '누아주'(nouage)작가로 유명한 신성희의 다른 면모다. 캔버스에 색점, 색선, 얼룩 등을 그리고, 그 바탕을 잘라 그 띠로 엮고 묶어 그물망을 만드는 누아주(프랑스 어로 ‘맺기’‘잇기’라는 뜻) 시리즈는 신성희의 독자적인 양식이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입체구조를 만들어내는 '누아주'는 '회화적 조각' 또는 '조각적인 회화'로 평면 회화에 대한 물음과 도전, 회화를 넘어서 회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화를 넘어선 '누아주'. 그 시작은 성경구절과 같다. '시작은 미약 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1970년대 흔하게 보였던 '마대'였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이 '표면과 이면'을 타이틀로 그동안 공개 된 적이 없었던 캔버스 뒷면을 그린 작품 등 '마대 페인팅' 3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파리로 건너간 80년부터 82년까지 '마대 위에 캔버스 뒷면'을 그린 작품은 최초 공개다.
거친 마대 캔버스와 그 위에 쌓아 올린 물감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극사실모노크롬 이다.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는 신성희의 초기작 중에 중요한 '마대 시리즈'는 실물의 마대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됨으로써 표면적인 회화형식에 대한 신성희의 독창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신성희의 첫 마대작업은 1974년경으로 파악된다. 당시는 국제적으로는 각종 포스트미니멀리즘이 유행하고 극사실주의가 대두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미니멀리즘과 이우환과모노하의 영향으로 단색화가 주도해가던 때다.
강태희 미술사가에 따르면 "특히 근대적인 미술 전통을 타기 하고 가공하지 않은 물질을 소재로 특정한 상황과 관계를 검증한 모노하의 미학과 논리는 이우환의 존재를 매개로 우리나라 미술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던 시기"다.
이런 배경에서 신성희가 캔버스 대신 마대를 택한 것은 당시 분위기상 자연스런 일이었지만, 일차적으로는 '강렬한 물성과 공기가 통하는 성긴 조직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성희는 하종현과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하종현이 마대를 바탕으로 모노크롬 화면을 그리는 대신 신성희는 마대 자루에서 나온 '올'을 극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 위에 물감을 쌓았다.
페인트의 물성으로 화면은 상당한 입체감과 부피감을 지니게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단색조 화면'을 탄생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얇은 캔버스에 마대의 느낌이 나는 극사실모노크롬 작업들을 했고, 마대 위에 그린 마대의 올이 두드러지는 본격적인 마대작업은 제목이 '회화'로 바뀌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신성희의 마대 페인팅은 진짜 올인지, 그림인지 헛갈리는 작품이다.
'확장 Expansion' 은 마대 페인팅의 초기 작품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한 동안은 얇은 캔버스에 마대의 한올 한올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했다. 작품은 마대가 풀려나간 흔적보다 마대에서 풀려나온 실이 더 길게 확장되어 있다. 신성희는 '확장'이후 본격적으로 마대 작업에 몰입했다.
이후 마대 작업의 작품 제목을 '회화'라고 붙였다. 마대 특유의 재질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반복적인 붓질을 가했던 정교함이 특징이다.
실제 마대 위에 그려낸 마대의 이미지와 부분적으로 비워둔 여백, 음영 또는 직선의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써 실상과 허상을 교차시키고 '회화는 결국 착각, 환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강태희 미술사가는 "평면 캔버스에 그려진 자연스러운 3차원의 이미지는 일루전을 전제하기에 모더니즘 미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반성의 대상이었고 극사실주의 역시 이런 추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면서 "마대 위에 마대를 재현하는 것은 실재와 허상, 대상과 재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회화의 영역과 그 문법을 점검하는 근본적인 일에 속한다"고 했다.
1971년 대학 졸업 후 10여 년을 국내 화단에서 활동한 신성희는 1980년 프랑스로 건너가 마대 작업의 장중한 모노크롬을 버리고 채색한 캔버스 천을 좁게 잘라 캔버스에 박아서 붙이거나 또 캔버스 틀에 엮는 작업으로 전진해갔다.
“나는 화폭에 무엇을 갖다놓는 문제에 앞서 장소의 문제를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갖다놓고 싶은 것은 대체로 3차원적인 형상인데 비해 놓여질 곳은 캔버스나 종이 같은 2차원적 평면이기 때문이며 이 두개의 상반된 개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3년, 신성희 작가노트 중에서)
신성희의 '마대 페인팅'은 '단색화 같다', '단색화다'는 트렌드를 넘어섰다. 회화가 가진 화면의 평면성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 했던 1970년대의 '마대 작업'은 21세기에도 '회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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