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전통사찰 중 경북도 소재 산사는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등 2개다.
◇천등산 봉정사(안동)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다.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고 '천등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했다.
경내에는 극락전(국보 제15호), 대웅전(국보 제311호), 후불벽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등이 있다.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건물이다.
1972년 극락전의 완전한 해체 복원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상량문에서 발견됐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다.
고려시대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대웅전도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자연석의 막돌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건물이다.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한 이 건물은 산 중턱에 세워진 건물이면서도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봉황산 부석사(영주)
당나라 종남산 화엄사에서 지엄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도를 닦은 의상이 670년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돌아왔다.
그 뒤 다섯 해 동안 양양 낙산사를 비롯해 전국을 다니다가 676년(신라 문무왕 16) 왕명을 받들어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했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등 많은 보물이 있다.
무량수전과 조사당은 고려시대 건축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사에서 거의 시조격에 해당하는 고풍을 보여준다.
무량수전은 1016년(고려 현종 7) 원융국사가 중창한 뒤 1376년(우왕 2) 원응국사가 다시 중수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을 거쳐 1916년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했다.
의상이 주석해 화엄사상을 닦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면서 부석사는 화엄 종찰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인 의상의 문하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의상의 손제자인 신림 이후 9세기에 들어 부석사는 '대덕'(大德)의 호칭을 받은 법사가 많이 배출됐다.
그 중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융, 양원, 상원, 능인, 의적 등은 화엄종을 발전시킨 승려들이다.
부석사는 초창 때보다 9세기 이후 왕권과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후삼국이 쟁투를 벌일 때 궁예가 부석사에 쳐들어와 벽에 그려진 신라 왕의 초상을 칼로 내리쳤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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