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한강의 기쁨' 잡은 조영남의 무염치

기사등록 2016/05/17 14:48:26 최종수정 2017/11/14 10:59:12
【부산=뉴시스】허상천 기자 = 가수, 미술가, 방송인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는 만능엔터테이너 조영남씨가 오는 22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인근 건물에 '조영남의 갤러리 카페 조이빈'을 연다. 2014.11.21. (사진 = 조이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낭보가 터진 날,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은 씁쓸하다.

 세계 권위의 맨부커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대작(大作)'의 영광이 '대작'에 묻혔다. 문단의 기쁨을 미술이 휘저어놓은 셈이 됐다.

 이는 '염치의 문제'다. 미술계는 진중권 교수가 앤디워홀을 예를 들며 개념미술이나 미술사적으로의 접근은 과분하다는 반응이다.

 진 교수가 "앤디 워홀은 '나는 그림 같은 것을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 것처럼 워홀은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조영남의 작품을 구입했었다는 한 컬렉터는 "그가 10만원주고 그려온 그림"이라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A씨가 8년간 작품의 90%를 그렸다"는 폭로가 어쩌면 핵심이다.

 조영남은 감췄다. 10만원을 주고 그리면서, 자신이 혼자 그린 것처럼 하고 판매를 한 것이 문제다. 네티즌이나 미술계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

 조영남이 “화가들은 조수를 다 쓴다. 오리지널은 내가 그린 것으로 내가 갖고 있고 그걸 찍어 보내 주면 똑같이 그려서 다시 보내 주는 게 조수”라고 해명했지만, 그는 전시를 열때나, 인터뷰에서도 조수와 함께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적이 없다.

 문제가 터지자 "무명 화가 A씨에게 세밀하고 디테일한 작업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대부분 A씨가 그렸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만 강조하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유명 작가들이 조수를 쓰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현대미술의 흐름'이다. 차별화된 작품, 그 작가만의 창조된 작업의 한 과정으로도 본다. 노동력만을 제공하고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며, 수십명의 조수를 두고 있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어찌보면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닌 '일자리, 고용 창출'도 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계에서 관행'이라고 하지만 조영남의 경우는 다르다. 방송에 나와 시시콜콜 사생활을 드러내며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조수 자랑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래로 따지고 보면 '립싱크'다. 가수가 리사이틀을 하는데, 똑같이 생긴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몰래 무대에 서게 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조영남은 스스로 가수 겸 화가라며 '화수'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화가는 아니다'는게 화상, 작가들의 생각이다.

 반면 조영남의 '화투그림'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조영남표' 작품이다. 별볼일 없는 일상 용품을 화폭에 올려놓는 순간, 미술작품이 됐다.  '레디메이드(ready-made)' 미술의 창시자 마르쉐 뒤샹(1887~1978)도 박수칠만한 작품이다. 그래서 '콘셉트 있는 작품'이라는 두둔도 있다.

 뒤샹은 '회화는 망했다'며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놓고 오직 사인 하나만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바꿨다. 복제의 복제, 기성품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은 이 변기는 현대 자본주의, 대량 생산 시대, 화가의 손을 해방시킨 장본인이다. 개념미술의 탄생이다.

 조영남은 방송에 '화투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켰다.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더 라움에서 열린 신곡발표회에 가수 조영남이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곡들은 모두 가수 조영남이 작사·작곡한 노래들이며 '대자보'는 최근 대학가를 시작으로 퍼졌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고 '쭉~서울'은 줄곧 서울에서 살아온 가수 조영남이 자신의 삶을 노랫말에 담고 있는 노래다. 2014.04.09.  choswat@newsis.com
다시 말해, 조영남 대작 논란은 '염치의 문제'다. 조영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그린 것 처럼 하고 그림을 팔았다. 매니저 외에는 그 누구도 10만원을 주고 그려온 그림이라는 걸 몰랐다. "하청을 줘 내가 손보고 팔았다"고 그 과정을 표현했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조영남을 잘 안다는 한 전시기획자는 "대작이 법적으로 문제없지만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개념이 아니라 "장르(가수화가)를 넘나들면서 직접 못 그리면 그리지를 말아야지"라고 지적했다.

 '화가'와 '연예인 화가'는 이마트와 화랑의 차이와 비슷하다. 인테리어 작품은 이마트에서 살수 있다. 현재 완성되어 있는 '상품'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 미술관에서 작품 구입은 그 작가의 미래의 비전과 가치까지 사는 것이다.

 작가들은 '예술에 혼을 바친다'. 10년, 20년 무명을 견디고, 목숨걸고 작업을 한다. '연예인 화가'들은 유명세만으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작가들에게 상실감을 제공했다. '수백만~수천만원짜리 작품이 '솔드아웃'됐다고 기사로 도배되며 진짜 화가들의 기를 꺾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가수겸 화가의 자업자득이다. 몰래 '대작'한 그림을 두고 '미술계 관행이냐 사기냐'는 논쟁의 가치도 없다. 돈 문제, 감정 문제가 있다면 법에서 해결할 문제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