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당시 인도네시아 군부와 우파 성향의 종교 단체들이 공산주의자 및 그 동조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50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반공 학살을 통해 장군 수하르토의 32년 독재 정권이 탄생했다.
이번 양측 모임은 초유의 일이다. 이날 이 이틀간의 모임으로 공산주의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경찰이 심중한 경비를 서고 있는 회의장으로 몰려와 상존해 있는 사상 대립을 보여주었다.
퇴역 장군으로 이 회의를 준비해온 아구스 위조조 장군은 "인도네시아는 이 학살로 '둘로 찢겨졌다'"면서 진실과 화해의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자카르타 호텔에서 열린 논의 모임은 정부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루후트 판다이탄 안보정무장관이 개회사를 했다. 검찰총장, 경찰총장 및 법무장관도 참석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 독재 정권이 무너진 1997년 이후에도 이 대학살의 진상은 잘 드러나지 않아 희생자 수가 극도로 축소된 채 사람들에게 알려져왔다. 공산당원의 후손들은 낙인이 찍혔으며 연좌제로 공직 진출이 막히는 등 수많은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민권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 정부에게 이 대학살과 관련된 외교 전문 등 모든 기밀 문서의 공개를 요구해왔다. 대학살 당시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를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이 동남아에 미치는 것을 막는 보루로 여기고 군부의 잔학 행위를 묵인했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kj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