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아름답다" 니스 동양미술관 러브콜
이기수 전 고대총장· 전 佛주한문화원장등 후원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한국 자수의 문화적 침략'이다"
지난해 9월 프랑스 르몽드신문 문화면에 한국에서 온 전시가 대서특필됐다. 프랑스 파리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전시된 '실그림 작가' 손인숙(64)의 작품때문이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된 이 전시는 프랑스인들을 매료시켰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동양미술관으로 콧대높은 기메박물관은 이례적으로 지하철역마다 '실 그림'전시 현수막을 잇따라 내걸고 적극 홍보도 펼쳤다. 기메박물관은 이집트 종교와 고미술품, 그리고 아시아 국가를 소재로 1889년 설립됐다. 이곳 한국관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13억원에 팔린 고려시대 작품 '수월관음도' 등이 전시돼있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고 있다. '자수의 품격'을 높이고 금의환향한 '실그림 작가' 손인숙씨를 서울 개포동 예원 실그림문화재단에서 만났다.
"서른아홉살때 이사온 아파트에요. 이곳에서 수행하듯 작업을 한 곳이기도 하죠"
60여평 아파트에 둥지를 튼 예원 실그림문화재단 전시장에 들어서면 깜짝 놀란다. 한땀 한땀 '실로 그린 그림'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수'의 모습이 아니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기본, 거대한 산수화처럼 펼쳐진 10폭 병풍과 자개빛깔처럼 수를 놓은 옷장까지 익숙한 자수의 개념을 깨트린다.
'알파고 시대', 바늘에 실을 꿰어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60년간 욕심안내고 작업만 해왔어요. 고통스럽지않았냐고요?. 힘은 들었지만 고통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7살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 덕분이다.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어머니는 '전인교육'의 선봉자였다. "그림을 그려도 나만의 그림을 그리게했지요. 항상 칭찬했어요. 잘못됐다고 야단치지도 않으셨죠."
10살때부터 바늘을 잡았다. '실로 그리는 그림'에 미쳤다. 뒤돌아보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십장생도, 병풍등으로 꽃피는 자수는 세월이 갈수록 시공간을 초월했다. 이화여대에 '자수과'가 있다는 것도,어머니를 통해서였다. 72년도에 자수과에 입학한 후에도 작업 욕심은 하늘을 찔렀다. '풍경화'과제가 나오면 남들이 1점 할때 20점을 했다. 당시 표구를 맡기면 동산방화랑 박주환 사장은 "이 학생은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자에게 온다'고 했다. 환갑이 지나 열린 프랑스 전시는 우연히 시작됐다. 2013년 겨울,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피 마카리우 이사장과 프랑스 장식미술관 올리비아 가베 관장이 한국에 왔다. 한불 전시기획자이자 실크로드 한불대표이사인 김효정 박사가 자리를 주선했다. "좋은 작품이 있는데 한번 보러가자". 둘은 "그럼 딱 30분만 보자"라고 했다. 리움· 대림미술관에 갈 계획이었다.
자수, '실그림'을 본 두명의 외국인은 이후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오전 9시30분에 들어와 오후 4시에 나갔다.
마카리우 기메박물관 이사장은 "다른 곳에서 이런걸 봐본적이 없다"며 극찬했다. 특히 자수로 그려나간 산수화 병풍 앞에서 “이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 움직인 것 같다. 빛을 잡아다가 밀어 넣은 것 아니냐”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파트 전시장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소피 마카리우 이사장이 말했다. "전시 한번 해봅시다."
다니엘 올리비에 전 주한 프랑스 문화원장이 징검다리가 됐다. 작품을 본 그도 '실그림'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올리비에는 "자수도 모르고 미술작품도 많이 알지못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느꼈다"면서 "주한 문화원장으로서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게 내 역할이고 소명"이라고 후원자로 나섰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를 하는데 민간인들의 교류는 많지 않았지요. 한국민들이 갖고 있는 성품과 삶을 프랑스에 알려주고 싶었지요."
다니엘 원장과 소피 이사장은 당황했다. "중국자수? 한국자수" 우리는 모른다. '미인도'를 새롭게 볼수 있게 한 한국의 전통문화 자수를 예술로 승화한 한국 여인의 규방문화를 알리고 싶다"며 전시를 추진했고, 결국 다니엘 전 주한 프랑스 문화원장이 한불수교 130주년 공식행사 인증을 따냈다.
김효정 박사는 "프랑스측에 정말 감사했다"면서 "손인숙의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 이전과 삶과 현대의 삶을 보여주는 '한국의 안방'을 타이틀로 전시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옛 귀족의 저택을 개조한 기메박물관에서 전시는 병풍 걸개 장식 복식 노리개 보자기등으로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게 한국여인의 삶과 문화를 한눈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작품이 한국을 떠나기까지 정작 작가는 마음 고생을 했다. "프랑스 전시에 갈 생각을 안했었다"는 작가는 "어머니 다음으로 숙제를 풀어준 사람이 이기수 전 고대총장"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이 된 이기수 전 고대총장은 "안가면 안된다. 후원받게 해주겠다"며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자수'가 그냥 '자수 정도'가 아닌 이유다. 보는 순간 중독세를 보이는 작품은 실을 통해 오늘을 재현하고 미래로 나아간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손인숙 작가를 '전통 장인'이 아닌 '예술가'로 평가한다.
한땀 한땀 실로 꿴 풍경화 산수화는 본을 떠 그린 게 아니다. 새로운 창조가 들어가 있다. '자수'와 다른점이다. 붓대신 바늘과 실로 그린 그림이다. 색색의 실로 그린 그림이어서 더욱 신비롭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실의 꼬임도 다르다. 마치 빛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반짝인다. '실로 그린 그림'만 있는게 아니다. '손인숙 표', 그를 예술가로 칭하는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에 있다. 그림에 맞게 제작된 액자, 그림속 인물들이 매듭으로 나와 하나로 완결된 궁극의 콜라보레이션이다.
"35년 넘게 장인들과 손발을 맞춰 호흡해왔다"는 작가는 "내 작품은 피와 땀으로 만든 작품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 많다"고 했다.
전통문화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 장인들도 맥이 끊겨, 대를 잇지 못한다. 전수받기도 힘들지만, 생계로 먹고 살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 융성'을 국정기조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문화예술인들은 배고픈 실정이다.
'실그림'예술로 한국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전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기수 예원실그림 문화재단 이사장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 이사장은 "헌법 제 1장 9조를 보라"며 손바닥만한 77쪽짜리 '대한민국 헌법 책'을 건넸다. '제 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이 창달에 노력하여야한다.' 고 적혀있다. 그는 '헌법 전도사'다. 국회의원을 만나면 헌법 46조를 읽어보라고 한다"면서 "최근 김무성 의원을 만나 국회에서 헌법 130조 전문을 다 읽고 이를 지키는 의원이 되겠다고 맹세를 해야한다고 주문했다"면서 "국회의원은 물론 국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읽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제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고 국민의 행복을 위한 기본을 지키자는 것.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도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며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이제 '문화 콘텐츠'는 미래성장 동력이다.
문화대국 프랑스에서 환대받고 온 손인숙 작가는 평생 해온 실그림 작업을 문화유산을 만들겠다는 욕심이다. 이미 박물관건축 허가도 받았다. 세계 10대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할 계획도 있다. 손 작가는 "세계 곳곳 박물관에서 한국관은 중국, 일본관보다 초라하다는 소리를 20년 전부터 들어왔다"며 "이제는 '실그림'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영혼을 바쳐 작업했기때문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국민들께 나누어준다는 생각으로 해왔지요."
'실그림'은 바늘과 실로 무한세계를 넘나든다. 환갑이 훌쩍 지나 세계미술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인숙 작가는 더 열정이 넘치고 있다. "작업요? 멈출수 없죠. 항상 새로운 컨텐츠로 보는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주고 싶어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마법같은 '실그림'은 예원실그림문화재단에서 만나볼 수 있다. 010-2380-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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