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다. 수감된 그 몸뚱이에는 낡은 담요 한 장만 걸쳐져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드는데, 그 하나뿐인 몸뚱이로 끝까지 저항한다. 굴종을 강요하는 폭력적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맞선다.
인간에게 신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강하게 만드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의 직업, 입고 있는 옷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섰을 때 한 인간의 인간됨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헝거’(감독 스티븐 매퀀)가 던지는 질문이다.
‘헝거’는 영국에 맞서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벌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핵심인물 보비 샌즈(1954~1981)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는 가둘 수 없다’는 시를 쓴 주인공이다. 고작 27세의 나이에 당시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에 맞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단식투쟁에 들어가 66일 만에 사망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간혹 비교된다. 단일민족의 애국심, 한의 정서, 약소국으로서 겪은 수난 등 닮은 구석이 많다고 한다. 13세기 아일랜드를 점령한 잉글랜드인은 그들을 ‘하얀 검둥이’라고 멸시하며 모국어도 쓰지 못하게 했다.
1919년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IRA가 일으킨 게릴라전으로 1921년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영국령)로 각각 분리됐다. 샌즈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IRA에 가담했다. 그는 1981년 메이즈 왕립교도소 단식 투쟁의 리더로 복역 중 영국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25일 간 지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살가죽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앙상한 뼈, 군데군데 썩어 들어가는 피부는 아사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느 순간 타인의 목소리가 윙윙대는 모기 소리 같다. 급기야 의식이 혼미해져 자신의 엄마 얼굴조차 희미해진다.
샌즈는 단식투쟁에 앞서 정치범으로 대우해줄 것으로 요구하며 ‘불결’ 투쟁도 벌였다. 오물을 복도로 흘려 보내고, 썩힌 음식물과 구더기가 들끓는 배설물로 벽에 그림을 그린다.
교도관들은 무장한 경찰을 동원해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숨긴 물건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항문과 구강 검사를 한다. 마스크를 한 채 대걸레로 감방 밖으로 흘러나온 오줌을 닦고 방역복 차림으로 호스를 끌고 와 벽에 눌러 붙은 똥을 씻어낸다.
단순히 영국은 가해자, IRA는 피해자로 2분하지 않고 샌즈를 둘러싼 주변인물과 풍경도 담아낸다. 빌어먹을 직업 때문에 매일 피를 보는 교도관의 눈은 자주 텅 비어있다. 교도소로 차출된 앳된 얼굴의 경찰관은 눈앞의 폭력적 상황에 너무 놀라 홀로 숨어서 벌벌 떤다. 몇몇 교도관은 IRA의 보복에 목숨을 잃었다. 대처 총리는 목소리로만 나온다.
비범한 아들의 흔들림 없는 투쟁을 묵묵히 지켜보는 두 부모에게도 눈이 간다. 서너 장면 밖에 나오지 않지만 누구보다 강렬하다.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버린 그들의 아들이 힘없이 두 눈을 감을 때는 뭐라 형언하기 힘든 마음이 된다.
마이클 패스빈더가 14㎏의 체중 감량을 시도했다. 미친 배우 아닌가. 이 폭력의 역사를 아름다운 영상시로 만든 스티브 매퀸은 냉철한 지성과 매우 뜨겁고도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매퀸은 2014년 ‘노예 12년’으로 흑인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 또한 인간의 폭력적 역사를 유려한 영상으로 담아냈다. 2008년 작 ‘헝거’는 매퀸의 데뷔작으로 제6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편 매퀸은 11세 때 TV를 통해 보비 샌즈를 본 적이 있다. “TV에 보비 샌즈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화면에 숫자가 표시돼 있었다. 부모는 그가 얼마나 단식 투쟁을 했는지 알려주는 날짜라고 설명해줬다.” 그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유로 “비록 난 아일랜드 출신이 아닌 영국 사람이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화부 기자 jash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