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사람 비교는 애초 무리
【서울=뉴시스】 장윤희 기자 = 이세돌 9단이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야 남은 대국에서 이길 수 있다는 평이 나왔다.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는 무거운 마음 대신 모든 대국에서 질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야 '감정 없는' 알파고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열린 2국에서 이세돌9단이 알파고에 접전 끝에 패했다. 9일 첫 대국에서 진 뒤 2회 연속 패배로 전세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이세돌 9단은 2국을 마친 뒤 열린 간담회에서 "알파고 기량에 놀란 것은 어제로 충분했다"며 "오늘은 할 말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고 쓴맛을 다셨다.
이세돌 9단의 경기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알파고 승리 요인으로 '방대한 연산과 무덤덤'으로 꼽았다. 인간보다 더 많은 수를 계산해 확률이 높은 착수를 하고, 설령 반응이 안 좋아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바둑을 둔 점이 이세돌 9단을 당황하게 했다는 것이다.
어제 첫 대국에서 패배한 것이 오늘 대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었다. 2국에서 이세돌9단이 초반부터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었는데 중압감 때문에 결국 승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아마추어급 실력을 지닌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오늘 경기는 알파고가 잘 둬서 이겼다기보다 이세돌 9단이 평소답지 않게 못 둬서 졌다"며 "이번 대국은 인공지능의 성능을 보여주기보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지니는 감정의 약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낯섦'을 과하게 의식했다. '이 정도 뒀으면 당황해야 하는데?'라고 판단한 순간에도 알파고는 무덤덤하게 쫓아온다. 기계 특유의 냉정함에 이세돌 9단이 아직 적응을 못했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이세돌 9단이 남은 세 경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차례 대국을 통해 알파고 패턴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대신, 알파고를 의식하지 말고 마음을 편히 가져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어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이 알파고에 5패했는데 사실 판후이 2단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첫 대국에서 인공지능에 졌다는 사실이 경기 내내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 9단은 의연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내 인공지능 연구 1세대인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카이스트 명예교수)은 "이세돌 9단이 자책하거나 낙담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인공지능의 연산 규모와 속도를 인간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평했다.
그는 또 "알파고는 방대한 계산 속에 최적의 수를 차례차례 놓는데, 우리가 알파고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착수조차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다, 컴퓨터는 실수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알파고가 세(勢)를 어떻게 움직인다' '착수를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알파고는 사실상 바둑을 두는 게 아니다. 생각과 감정 없이 그냥 승률이 높은 최적의 수를 찾아 결괏값을 내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알파고가 착수를 위해 계산하는 승률이 100%는 아니므로 이세돌 9단이 이길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녹록지 못한 대국이 될 것이다. 이세돌 9단이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이날 대국을 마치고 "이미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었다"며 "한판이라도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앞으로 3차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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