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이지함이 쓰지 않았다는 말인가

기사등록 2016/02/07 07:43:00 최종수정 2016/12/28 16:34:45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1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土亭) 이지함( 1517~1578)은 점·천문·음양·술서 등에 모두 능했다고 전해진다.

 "아내의 가문에 길할 기운이 없으니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가솔을 이끌고 떠났는데, 그 다음 날 모산수(장인) 집에 화가 일어났다." (선조수정실록 11년 7월)

 결혼 후 처가에 기거하던 이지함은 어느 날 가솔을 이끌고 집을 나서고, 얼마 후 장인이 역모 혐의로 끌려간다. 처가의 멸문지화를 예언한 것이다. 이지함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임진왜란을 예언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 예언했다고 한다.

 1573년 포천 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고을의 어려움을 접하고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담은 상소를 올린다. 물고기와 소금 등 자원을 활용하여 백성들의 삶의 질과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는 경기 포천에 있으면서도 전라도와 황해도의 작은 섬에서 무엇이 나는지 알고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지함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론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던 실천가였던 것이다.

 이는 농업을 근본으로 하던 조선 사회에 가히 혁명적 주장이었을 뿐 아니라, 영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보다 200년이나 앞선 생각이었다. 민생을 품은 '조선의 국부론자'인 셈이다.

 세도 정치와 조세 제도의 붕괴로 어지러웠던 19세기 말 조선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괘로 가득했던 '토정비결'은 백성들을 위로하며 조선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마치 백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를 살피던 이지함의 마음을 닮았다. 그런데 이지함이 죽고 출간된 시문집 '토정유고' 조선 후기 백성들의 생활상이 기록된 '경도잡지' 동국세시기'에는 '토정비결'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7일 밤 10시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토정비결, 희망을 꿈꾸다'편을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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