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해석 그리고 정보와 생명 '양자·정보·생명'

기사등록 2016/01/22 10:48:05 최종수정 2016/12/28 16:30:10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실제로 양자역학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길은 역시 고전역학이다. 고전역학에 길들여진 사고는 한편으로 양자역학의 이해를 방해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이것을 의식적으로 넘어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전역학은 좋은 길 안내자이기도 하다. 생소한 양자역학의 세계에 들어서서 방황하게 될 때 개략적인 ‘약도’의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고전역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는 다시 고전역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간 우리는 고전역학에 너무도 친숙하여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진정 이것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25쪽)

 "양자역학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세계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 매우 정확한 예측을 제공한다. 이러한 양자역학을 참인 이론으로 받아들이면, 인간의 감각으로 직접 경험하는 현상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미시세계의 모습에 대해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현상들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틀을 제공할 뿐, 미시세계의 구석구석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이 대답하지 않는 질문들에 대해 양자역학과 일관된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 해석이다."(195쪽)

 장회익(78)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이중원(57) 서울시립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등 8인의 물리학자·과학철학자들이 '양자·정보·생명'을 냈다. 양자역학과 이를 둘러싼 정보 및 생명 개념들을 설명한 책이다.

 "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리처드 파인만)

 "양자역학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사용할 줄은 아는 무척 신비스럽고 당혹스러운 학문이다."(머리 겔만)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두 학자의 이 말은 양자역학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1920년대 이후 약 90년에 걸쳐 우리 지성계가 놓인 정황을 잘 말해준다. 양자역학은 구체적 대상들에 활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놀라운 설명력과 예측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20세기 이후 이루어진 중요한 과학의 성취 가운데 양자역학에 힘입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진정 이해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모두 양자역학을 익히기는 했으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라고 하면 난감해한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그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양자역학만이 지닌 독특한 학문적 성격에 있다. 양자역학은 기존의 체계적 학문들이 공유해온 어떤 보편적 관념의 바탕 위에서는 서술하기가 매우 어려운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배워 익힐 수는 있으나 납득하기는 쉽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역사적으로 양자역학이 성공적인 과학이론으로 정착되던 1920~1930년대 이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논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리학자들뿐 아니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어떤 뚜렷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수많은 해석들의 점철이 있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보어가 중심이 된 코펜하겐 해석, 아인슈타인의 통계적인 앙상블 해석, 데이비드 봄의 숨은 변수 해석, 휴 에버렛 3세 중심의 다세계 해석, 데이비드 앨버트의 여러 마음 해석 등이 있었다. 이런 해석들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던 것은 실재성 문제와 측정 문제다.

 실재성 문제란 양자역학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 확률이 개입하고 대상의 물리량이 불확정적이라면, 양자역학이 물질세계를 있는 그대로 과연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와 관련돼 있다. 측정 문제는 대상에 대한 측정 과정에서 대상의 상태함수가 붕괴하는 등 기이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어떻게 정합적으로 해명할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들을 놓고 몇몇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1990년경부터 대안적인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온 해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서울 해석'이다. 이 책은 이 서울 해석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까지 오랜 기간 국내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진지하게 숙의해온 성과들을 한데 모아, 다른 많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책인 것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양자역학의 해석'이고, 2부는 '정보와 생명'이다. 1부에서는 주로 양자역학의 사물 인식구조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해, 양자역학에 대한 서울 해석의 핵심 주장들을 밝히고 이를 정당화한다. 나아가 서울 해석이 기존의 수많은 해석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세밀하게 비교·분석한다.

 2부에서는 1부에서 언급된 양자역학의 인식구조를 정보의 흐름 관점에서 좀 더 명확히 하고자 우선 대상 사물에 대한 인식 과정에서 정보가 인식주체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정보와 물질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양자역학 안에서 그동안 강조됐던 정보의 의미와 고전물리학에서 사용되었던 정보 개념들의 특성은 무엇인지를 밝힌다.

 "서울 해석의 성취는 보어 이후 한동안 잊힌 인식론적 문제를 다시 논의의 초점으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정보이론이나 서울 해석처럼 과거의 통찰을 재발견하는 일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창조이다. 역사란 과거에 이미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전개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역학의 초기 해석과 해석상의 논쟁을 검토하는 일도 현재의 작업을 반추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의미가 있다. 물리학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와 혁명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공정하게 검토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생기는 것일지 모른다."(160~161쪽)

 "란다우어와 서울 해석 모두 정보를 추상적 수준에서는 물리학 이론이 상정하는 상태기술에 내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대상계가 존재론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그래서 정보의 물리적 성격과 물리학적 성격 사이의 차이점에 둔감한 란다우어에 비해 서울 해석은 정보의 물리학적 성격을 보다 강조한다. 물론 서울 해석도 정보가 물질적 우주에 내재하는 물리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정보는 인식주체의 인식 활동에서 획득된 인식론적 추상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정보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인식주체를 인식 과정에서 '남겨진 부분' 이상으로 명확하게 해명할 수 있을 때에나 대답될 수 있을 것이다."(233~234쪽)

 저자는 "의사소통 중인 사회의 맥락, 타자와 함께 사물과 접촉하는 기나긴 지각 과정의 역사, 나아가 인류가 자연과 교류한 지각의 전체 역사, 인류가 공통 세계 속에서 서로 의사소통한 전체 역사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의미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화하는 문장의 의미는 인류 출현 이전 생명의 역사까지 어렴풋이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정보의 네트워크를 대강이나마 파악하려는 과제는 전체 과학들이 참여해야 하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일 것이다. 정보가 플라톤이 사유의 장소로 상정했던 곳, 버클리가 무한 정신이라 불렀던 곳, 프레게가 제3의 영역이라고 말했던 곳에서 생성되는지, 아니면 역사 속에서, 특히 진화의 역사 속에서 생성되는지, 우리의 물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84쪽, 3만9500원,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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