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김경욱 '천국의 문'…죽음에 대한 다른 시선

기사등록 2016/01/11 17:08:53 최종수정 2016/12/28 16:26:54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작가 김경욱(45)의 단편 소설 '천국의 문'은 그의 죽음을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짧은 분량에도 한국의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의식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다. 노인의 병과 죽음, 가족공동체의 해체가 예다. 치밀한 구성을 통한, 죽음에 대한 거리 두기 묘사로 긴장과 이완을 수시로 오간다. 이 같은 문학적 성취로 '문학사상'이 선정한 '2016년도 제40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뽑혔다.  

 김씨는 11일 "나이가 들어서 병 들고 조금 더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년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전에 투병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며 "죽음이 무엇이고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것이 무엇일까. 남은 사람은 이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단지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이 아닌, 사회적인 관점에서 쓴 소설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금기시하고,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문화"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어간 것이다.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나 주변에서 뒷바라지하는 가족들에게 최선의 길이 무엇인가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말은 못하지만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외국 사회를 들여보면 죽음에 대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논의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철학적, 종교적인 견해들을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천국의 문'에 등장하는 남자 요양 간호사가 논의의 한 축을 담당한다. 소설에는 우리 몸의 어느 혈을 자극하면 고통 없이 생을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종의 존엄사인 셈이다. 김씨는 '천국의 문'이라는 제목도 여기서 따왔다. 김씨가 소설적 장치로 지어낸 혈이다.

 김씨는 "남자 간호사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 인물에 따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의 새로운 이동이다.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등한시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런 관점에서 '천국의 문'이라는 제목을 썼다"고 밝혔다.

 '천국의 문'으로 통하는 혈을 착안한 것에 대해서는 "남자 간호사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비유적인 면모가 강하다. 이런 인물이 존엄사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까 생각을 했더니 침과 혈을 떠올리게 되더라"고 답했다.

 스스로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삶은 이쪽이고 죽음은 저쪽이라고 나누면, 예전에는 이쪽의 관점에서 죽음의 테마를 생각했다. 근데 최근에는 이쪽이 아니고 이쪽과 저쪽 사이의 어딘가에서 죽음의 문제를 생각한다. 소설에도 그런 관점이 반영됐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 그 반대말을 떠올리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고 이야기했다.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를 생각할 때 삶만 생각하면 온전한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반대의 의미를 생각할 때 삶의 의미도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아들의 시선이 아닌 딸의 시선으로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아들의 시선으로 쓰면 너무 감정 이입을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관점이 아닌 사회적인 관점으로 쓰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위해 거리를 둬야 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천국의 문'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죽음에 아주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죽음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우리 사회는 목숨을 연명시키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뒷받침을 해야 하는데 대개 가족이 그 역할을 한다. 대부분은 자식이지. 특별히 딸이 품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서사, 즉 감정과 빚어지는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적인 부분에서 접근을 하고자 했다. 아버지에 대한 소설로 읽힐 수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김씨는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 '아웃사이더'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 '모리슨 호텔 '황금사과' '천년의 왕국' 등을 펴냈다.

 영화적인 제목이 인상적인 초기 소설에서는 영상을 보는 듯한 작법이 특징이었다. "예전에는 영화를 많이 봤는데 그 때만큼 이제 영화를 안 보게 됐다"며 "극장 가는 것도 힘들고 이제 책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웃었다. 지금은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최근 비문학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문학 안에 있으면 접하지 못할 관점, 다른 시각을 더하게 되는 장점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서사창작과 전임교수이기도 한 김씨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나눈다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을 받기 전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도 받았다. "상을 받으면 기쁜데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는 그는 "내게 글쓰기는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던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애정어린 채찍으로 듣고 열심히 하겠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권영민·김성곤·김인숙·김종욱·윤후명)는 '천국의 문'에 대해 "부성(父性) 부재의 현실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 문제는 소설의 결말에서 패러디의 방식을 통해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며 "시간의 능란한 구사와 서사 공간의 확대, 패러디의 감각과 그 주제의 해로운 해석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알렸다.

 '천국의 문' 외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총 5편이다. 김이설 '빈집', 김탁환 '앵두의 시간', 윤이형 '이웃의 선한 사람', 정찬 '등불', 황정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등이다. 대상 상금은 3500만원, 우수작 상금은 300만원이다. 수상 작품집은 21일께 발간 예정이다. 시상식은 올해 11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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