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과 밤에 각각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낮이면 흰 가운 입은 친절한 올리버 박사님으로 살다가 일몰이 오면 모터사이클용 가죽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 늑대처럼 병원을 빠져나가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타말파이어스 산의 굽잇길을 타고 올라가 달빛 내리는 길로 스틴슨비치나 보데가 만까지 달렸다. 이 이중생활에는 내 중간 이름, 울프Wolf가 아주 유용했다. 톰과 바이크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는 울프, 동료 의사들에게는 올리버였으니 말이다."(96쪽)
미국의 저명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가 타계 직전 남긴 자서전 '온 더 무브'가 번역 출간됐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알베르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과 뉴욕대학을 거쳐 2007~2012년 컬럼비아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뉴욕타임스는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편두통' 등 10여 권을 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록펠러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받았다.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도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82세로 타계했다.
'온 더 무브'는 올리버 색스가 추구한 끝없는 모험,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의 생생한 기록이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담백한 어조로 서술했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이 넘친다.
"1966년 10월,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내 상태가 호전되었다. 나는 환자들에게 매료되었고,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했다. 임상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환자를 치료하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기쁨은 수련 중인 레지던트였을 때는 부정당했던 주체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마약은 덜 찾고 정신과 상담 때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1967년 2월에 한 번 더 약에 취해 조증 상태가 되었다. 이번의 황홀경은 (역설적으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들과는 달리) 창조적인 쪽으로 향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었다. 편두통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쓰고 어쩌면 그다음으로 다른 책들도 써보자고. 그것은 그저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 신경학 연구 작업과 저술에 초점을 둔 아주 명확한 지침이었다. 이 깨우침은 약에 취해 있을 때 왔지만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았다."(187쪽)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먹물쟁이라고 했는데, 잉크 먹물 쏟고 묻히기는 지금이나 7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나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중략) 내가 쓰는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뿐더러 나 스스로 지난 일기를 꺼내 읽는 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일기는 내가 자신과 단둘이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과의 대화에 필수적인 형식의 글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475쪽)
2015년 2월19일 뉴욕타임스 지면에는 올리버 색스의 특별 기고문이 실렸다. 2005년 눈에 발병했던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사실과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 같이 밝혔다.
"두렵지 않다고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주었습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세상과 소통했고, 특히 여러 작가와 독자와 소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이민아 옮김, 496쪽, 2만2000원,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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