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젊은 거장 지아장커(45) 감독은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인 '산하고인(山河故人)'을 이렇게 설명했다.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이 영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아장커 감독을 비롯해 주연 배우인 자오타오와 동지전 그리고 올해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배우 겸 감독 실비아 창이 자리했다.
앞서 오전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서 공개된 '산하고인'은 지아장커 감독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999년부터 2025년까지 26년의 세월이 126분에 녹아든 작품이다.
중국 현대사의 폐부를 조용히 응시한 뒤 아프게 찌르는 지아장커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은 없다. 그러나 '산하고인'은 지아장커 감독 이름 앞에 붙는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영화임을 확인했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해버리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떠난 것과 남겨진 것 등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 균열을 말할 수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다.
영화는 세 챕터로 나뉜다. 1999년과 2014년, 2025년이다. 눈길을 끄는 건 1999년이라는 시대다. 이 시기 중국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지아장커 감독은 1999년을 "독특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라며 "사람들이 인터넷을 쓰기 시작하고, 휴대전화가 보급됐으며 자가용이 많아져 그것들이 개인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것들이 사실상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화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감정적인 면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에서 지아장커 감독은 대표작인 '스틸 라이프'(2006), '24시티'(2008)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연출을 보여준다. 전작들에서 지아장커 감독이 관찰자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의 그는 등장인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삶을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에 대해 지아장커 감독은 "예전에는 객관적으로, 먼 거리에서 (인간을) 바라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클로즈업도 쓰면서 다른 방식으로 인물을 바라보려 했다"고 답했다. "예전에 감정을 억눌렀다면 이번에는 감정이 폭발할 때는 그대로 놔두는 등 정서적으로 자유롭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는 고백이다.
영화를 타오의 군무(群舞)로 열고 독무(獨舞)로 닫는 부분, 전작에서는 거의 쓰지 않던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부분, 영화의 타이틀을 영화가 1999년의 이야기(상영시간의 3분의 1 지점)가 끝나는 부분에서 공개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지아장커 감독은 "리듬감을 찾고자 했다"고 설명하며 "(음악과 춤을 통해) 몸 안에서 흐르는 혈액을 관객이 느꼈으면 했다"고 바랐다. 한참 늦은 타이틀 공개에 대해서는 "1999년과 2014년 사이에 15년이라는 시간 차가 있다. 시간의 공백,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제목을 그때 넣었다"고 전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담백한 화법, 젠체하지 않는 대사와 같이 지아장커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과 함께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 자오타오의 뛰어난 연기도 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는다. 자오타오가 연기한 타오가 '펫 숍 보이즈'의 노래 '고 웨스트'에 맞춰 홀로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자오타오는 이 작품으로 올해 대만 금마장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지아장커 감독은 1970년 중국 펜양 출신이다.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소무'로 데뷔했다. 2006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스틸 라이프'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플랫폼'(2000), '세계'(2004), '24 시티'(2008) 등이 있다. 2012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AFA 교장을 지냈으며,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황금마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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